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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컨퍼런스가 그리는 미래, 그 안에 여자인 나는 없었다.

2017년 개최된 6개 분야 29개 컨퍼런스, 여성은 5명 중 1명뿐

조경숙 2017년 12월 21일 정인선

매해 컨퍼런스를 다녔지만 2017년 참여했던 컨퍼런스들은 내게 좀 더 특별했다. 지금까지 다녔던 컨퍼런스는 IT 제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홍보와 영업 목적이 강했고, 참가하는 나 역시 최신 IT 기술을 ‘아이쇼핑'하려는 목적이었다.

반면 2017년 참석했던 컨퍼런스는 개별 제품에 대한 이야기보다 업계의 동향이나 미래 기술에 대한 주제가 많았다. 개발자들이 직접 연 컨퍼런스들에 처음 가보았고, 서비스 기획자들이 이야기를 발표하는 자리에도 참여했다. ‘사회혁신'이라 불리는 비영리 단체의 컨퍼런스, 나와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흥미가 있던 미디어 컨퍼런스도 참석했다.

업계가 다른 만큼 서로 행사 포맷이나 분위기도 상당히 다른데, 심지어 참석자들의 의상까지 조금씩 차이가 났다. 지금까지 다녔던 IT 컨퍼런스는 대개 백팩을 멘 정장 차림이 많았는데, 최근 참석한 개발자 컨퍼런스는 맨투맨과 후드티가 압도적이었다. 스타트업 컨퍼런스는 비즈니스 캐쥬얼이었다. 비영리 컨퍼런스의 복장도 전반적으로 개발자 컨퍼런스와 비슷했지만, 간간히 개량한복이나 스님 옷도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게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컨퍼런스 발표자의 ‘성비' 였다. 비영리 업계에 여성이 많은건진 몰라도, 비영리 컨퍼런스는 여성 발표자 비율이 꽤 높았다. 세명이 대담을 나누는 메인 토크쇼에서도 셋 중 두 명은 여성이었다.

반면 개발자 컨퍼런스 뿐 아니라 미디어와 스타트업 컨퍼런스 역시 여성이 거의 전무하거나 극소수였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동료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이런 내용을 SNS 에 게재했더니 공감한다는 댓글이 우수수 달렸다. 이 동료 뿐 아니라 평소 이런 대화를 그다지 나누지 않던 다른 페친의 SNS 에서도 “스피커가 남성밖에 없는 컨퍼런스는 가지 않겠다"는 게시물을 발견했다.

우리가 느끼는 문제의식이 정말 ‘팩트'인지 먼저 조사해 보기로 했다. 2017년 개최된 컨퍼런스들을 대상으로 스피커 현황을 조사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스피커 사진을 보고 주로 분석했고, 스피커 이름만 실려 있는 경우엔 일일이 검색해가며 성별을 조사했다. 네이버에서 개최한 개발자 컨퍼런스의 경우, 모든 스피커의 강연으로 영상으로 촬영하여 공개해두었기 때문에 영상을 일일이 클릭해가며 스피커 성비를 파악했다. 그 결과는 아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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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스피커는 5명 중 1명뿐, 실화냐...

마케팅, 창업, IT, 사회혁신, 미디어, 고령화 6개 영역 29개 컨퍼런스 대상 조사 결과 사회혁신 분야의 컨퍼런스가 그나마 성비가 비슷했다. IT 컨퍼런스의 경우 매우 처참한 수준이었다. 몇몇 IT 컨퍼런스는 남성 스피커가 50여명에 달했다. 반면 여성 스피커는 1~2명 있거나 그나마도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았다.

2017년 열린 13개의 IT 컨퍼런스를 조사한 결과 스피커 298명 가운데 여성 수는 고작 26명으로, 약 9%에 불과했다. 그나마 사회혁신 분야는 성비가 균등한 모양새를 보였는데도 여성 스피커 비율은 44%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미디어 분야도 마찬가지로 심각했는데 4개의 대규모 미디어 컨퍼런스 가운데 여성 스피커 비율은 23%에 그쳤다. 23%라는 수치도 <2017 구글 뉴스랩 혁신 포럼> 덕택에 상향된 수치이고, 해당 컨퍼런스를 제외하면 여성 스피커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미디어 컨퍼런스에서도 여성 스피커는 ‘다양성', ‘혁신' 주제에 포진되어 있었다. 업계의 일반적인 영역이 아니라 ‘다양성'을 보는 자리에서나 여성 스피커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각계각층에서 나름 자부심을 갖고 만든다는 컨퍼런스의 스피커 성별 비율은 6개 분야 29개 컨퍼런스를 통틀어 남성 스피커 총 506명, 여성 스피커 117명으로 19%에 불과했다.

나름 IT 업계에 7년 정도 몸 담아 왔던 개발자로서, IT 컨퍼런스에서 여성 스피커 비율이 8%라는 건 정말 깜짝 놀랄만한 수치다. 현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언제나 프로젝트의 구성원 가운데 최소 30%는 여성이 차지하고 있었다. 반드시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인프라 관리자, 프로젝트 매니저, 품질 관리자 등 여러 분야에 여성들이 꼭 포함되어 있었다. 상급 관리자에서는 여성을 찾기가 힘들긴 했지만, 컨퍼런스에 주로 참여하는 실무자~중간관리자 계층은 프로젝트 투입 규모와 비슷한 비율로 여성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예컨대 네이버의 재직 중인 여성 근로자는 37.5%(2017년 3월 DART 공시 기준)인 데에 반해 네이버 주관으로 개최된 Deview 컨퍼런스의 여성 스피커 비율은 약 10%였다. 물론 네이버 재직자들만 참여하는게 아니고, 외부 스피커들이 다수 초대된 컨퍼런스였던 데다가 37.5%의 여성 근로자 가운데 개발 직군을 또 가려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퍼런스 여성 스피커와 실무 비율이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건 의아한 일이다.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2015년 언론산업통계를 보면 언론 종사자 가운데 여성 비율이 30%에 육박하는 데에 반해 미디어 산업에서 꽤 큰 규모로 열린 <2017 저널리즘의 미래>, <2017 데이터 저널리즘 코리아 컨퍼런스> 등에서는 여성 스피커 비율이 8%에 불과했다. 48명의 스피커 가운데 여성은 고작 4명밖에 없었다.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공통’의 고민을 나누는 일

개인적으로 나는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하면서 더 열심히 컨퍼런스들을 찾아다녔다. IT 컨퍼런스 뿐 아니라 미디어, 창업 컨퍼런스도 여건이 되는대로 빠지지 않고 참석했는데, 내게 가장 중요했던 건 무엇보다도 ‘정보'와 ‘네트워크'였다.

두 번째로 이직한 회사에서 내게 바라는 건 ‘신기술'이었다. 기존에 있던 개발팀 인원으로는 지금 당장 있는 시스템을 유지보수하기에도 벅찼지만, 임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신기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자란 인원을 채우기 위해 개발자 채용 공고를 냈고 그 자리에 내가 채용되었다. 그런즉, 신기술은 내가 전담하여 공부하고 스스로 습득하여 진행해야 했다.

요새 ‘핫'하다는 기술들 목록을 열심히 검색해가면서 인터넷 강의도 듣고 이런저런 개발 커뮤니티도 들락거리며 열심히 공부를 쌓았다. 혼자 고민하는 내용들을 바깥으로 알리면서 도움도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개발일지' 블로그도 열어서 매일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 개발하며 발생하는 여러 오류들을 해결하는 일)한 내용들을 꼼꼼하게 기록해두었다. 모자란 내용들은 책도 보고 여러 개발 블로그도 구독하며 채워넣었지만, 상시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지 검증할 길이 없었다. 아무래도 같이 이 기술을 공부해주는 동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동료를 얻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해당 기술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커뮤니티에서 여는 컨퍼런스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컨퍼런스에 단지 커뮤니티를 바라고 참석한 건 아니다. IT 컨퍼런스는 내게 커뮤니티로서의 성격이 강했지만, 같은 해 참석한 미디어 컨퍼런스에 걸었던 기대는 그것과 완전히 달랐다. 미디어는 계속해서 관심이 있던 주제였고, 미디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실험들을 엿보고 싶은 마음에 참석했었다. 미디어 산업의 주류 흐름이 어디인지 막연한 호기심에서였다.

컨퍼런스는 미래의 가능성을 그리는 자리, 그 미래 속에 나는 없었다.

그런가하면 얼마 전 우연히 접한 Publy 의 리포트 <reThink Food에서 발견한 산업 리더십>에서는 컨퍼런스의 ‘효용'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체감한 컨퍼런스의 진정한 가치는,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공통된 고민을 화두로 던지고, 각자의 경험과 의견을 나눔으로써, 미래의 변화가 가져올 긍정적 기대를 서로 확인하고, 불안감을 서로 다독여 주는 장을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이분영, 김안나

내가 컨퍼런스에 참석하려고 했던 필요들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결국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같이 고민하는 일, 나아가 업계의 미래를 파악하는 일이 컨퍼런스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를 찰떡같이 맞출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컨퍼런스’는 서로가 기대하는 가능성들을 대화하고 토론하는 공론장이어야 한다.

지금껏 남성들만 발표하는 컨퍼런스에서 나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미래의 ‘가능성' 안에 내가 없다고 여겼었다. 그걸 의식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컨퍼런스에 갈 때마다 늘 조금씩 위축되어 있었던 것만 기억난다. 내가 그렇게 위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것도, 2015년 MS에서 주관한 IT 컨퍼런스에서 여성 스피커를 처음 발견하고나서였다.

그다지 규모가 큰 컨퍼런스는 아니었고, MS 관계사만 초빙된 프라이빗 컨퍼런스였다. 지금껏 다녀온 컨퍼런스에서는 남성밖에 없었고, 여성이 있더라도 대개 사회자 역할이었는데 그때 본 여성 스피커는 기술적인 내용을 피칭하고 있었다. 컨퍼런스를 다니며 궁금한게 생겨도 질문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그날따라 용기가 났는지 손을 번쩍 들고 처음 질문도 해보았다. 이전에 발표를 들을 땐 그저 기술적으로 필요한 내용만 얻어 갔는데, 여성 스피커의 발표를 듣고나선 새로운 기대감에 휩싸여 들떠 있었다. “나도 나중에 저자리에 설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비로소 하게 된 것이다.

글 = 조경숙


여성들 사이 약한 연결고리 만드는 게 목표

여성 기획자 컨퍼런스를 주최한 ‘테크페미'의 김매이 씨는 지난 11월 17일 Deepr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다니는 회사도 여성 비율이 18% 정도밖에 안 된다. (업계에서) 일하는 여성 자체가 많지 않으니, (그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김매이 씨의 설명에 따르면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 기획이 아닌 서비스 기획이라는 직군 자체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지 오래 되지 않았다. IT 업계에서 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여성들이 참고 삼을 만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테크페미가 7~8년차 정도의 여성 기획자들의 입을 통해 ‘기획자의 일'에 대해 들어보는 게 의미 있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인터넷 또는 (여성들 사이에) 약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조금씩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 임팩트를 내는 과정이 될 수 있고요.” _테크페미 김매이

숫자가 말해주듯, 아직까지는 ‘여기컨'과 같이 아예 여성을 주된 타깃으로 삼은 경우, 또는 ‘Re:work Conference’나 ‘이상한모임 연말정산 컨퍼런스'와 같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서는 여성 스피커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연사 섭외 등 컨퍼런스 기획에 실제로 참여한 실무자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에 잘 알려진 여성 리더의 풀 자체가 좁다"고 지적한다.

숨어 있는 여성 리더 찾아 보여주기 어려워

오픈 컨퍼런스는 아니지만, 언론사 입사 지망생과 뉴미디어 분야 종사 희망자를 대상으로 열리는 교육 프로그램인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의 기획 및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블로터>의 채반석 기자는 “연사의 성비를 최대한 5:5로 맞춘다는 내부 목표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여성 연사로) 절반을 채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대체로 다양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팀장급 이상 인사 가운데 연사 섭외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업계에서 팀장급 이상의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성비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팀장급 이하 실무자 레벨에서 연사를 섭외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들이 회사 내에서 기회를 잘 못 받는 현실도 여성 연사 후보군을 좁히는 이유로 작용하는 것 같다."_<블로터> 채반석 기자

비영리단체 루트임팩트의 정다현 마케팅 매니저도 “사회 리더 그룹 가운데 남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아, 여성 리더를 찾거나 떠올리는 게 쉽지 않았다. (참고를 위해 찾아본) 언론 보도에서조차 남성 리더가 다뤄진 비율이 높아, 숨어 있는 여성 리더를 찾아 보여주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내가 무대에 서도 될까?" 망설이는 여성들

발표자의 성별 비율을 고려해 섭외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밝힌 한 IT 컨퍼런스 관계자는 “컨퍼런스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정도 노출된 사람 중에서 찾게되는데, 언론이나 컨퍼런스 등 행사에 노출된 경험을 가진 여성 발표자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여성의 심리적 위축 또한 여성 연사 섭외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남성 연사 후보군에 비해, 여성의 경우 ‘내가 무대에 서도 될까?’하고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여성 발표자들은 생각보다 소극적인 것 같다. 내 얘기가 어떻게 평가될까, 내가 발표를 해도 될까 이런 생각들을 굳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해보면 별 것 아니고, 하고나서 얻어지는 것도 많은데 지레 겁먹고 굳이 안해도 되는 일이거나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안하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가족행사 등 가정의 일정 등을 이유로 섭외가 불발되면 마음이 아프다.” _익명의 IT 업계 컨퍼런스 관계자

그런가 하면 여성 스피커 21명, 남성 스피커 13명이 무대에 섰던 Re:work Conference 의 경우 ‘여성 스피커 섭외에 어려움이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기획자 김미진 씨는 이렇게 말했다.

“스피커 섭외 시 해당 컨텐츠에 대해 가장 탁월한 (직위나 직책보다도) 인사이트와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찾았는데 열에 여섯이 여성이었다. 일의 전환, 실험, 노동 등 폭넓은 주제를 갖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탁월한 여성 스피커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글 = 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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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Grace Heej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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