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경비 노동자 수 줄여서 비용 절감하면 된다 vs 막상 경비실 비어 있으면 불만 나올 것

성북구 모의 시민의회, 아파트 경비 노동자와 주민의 동행을 논하다

윤지원 2017년 12월 25일

‘땅, 땅, 땅.’

지난 12월 16일, 임시 의장을 맡은 김의영 한국정치학회 회장(서울대 정치학 교수)이 의사봉을 힘차게 두드리면서 아파트 경비원 고용안정 방안 마련을 위한 성북구 모의 시민의회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날 모의 시민의회에는 성북구 시민참여단과 각 아파트 동대표, 그리고 경비 노동자 등 성북구민 85명이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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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불안정 불가피 VS 임금 상승보다 고용 안정이 중요

1차 토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경비 노동자 임금 이슈와 관련한 각 이해 당사자들이 증인으로 참석했습니다. 고용주인 아파트 입주자 대표, 경비 노동자의 업무를 관리・감독하는 관리소장, 그리고 당사자인 경비 노동자를 대표해 각각 한 명씩 자신의 입장에 따른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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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승보 (아파트 입주자 대표)

"경비 노동자라는 직업군 자체를 유지할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최저임금 감액 적용을 부활하거나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는 등의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경비 노동자 관련 법인 공동주택관리법과 경비업법이 현장 상황과 맞지 않습니다. 경비 노동자 관련법을 개정해 경비 노동자 업무 범위를 조정해야 합니다.”

  • 서성학 (동아에코빌 아파트 관리소장)

"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경비 노동자 외에 관리사무소 직원과 미화 노동자도 있습니다. 그들을 포함해서 소장인 저 역시 모두 비정규직입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경비 노동자뿐 아니라 이들 모두의 인건비가 상승하는 것입니다.”

  • 유일만 (동아에코빌 아파트 경비 노동자)

“경비 노동자는 아침 6시에 출근해 소등, 순찰, 청소, 화재 대비, 택배 등의 업무를 합니다. 눈이 온다면 추가 작업을 해야 합니다. 야간에도 자정 넘어서 층간 소음 민원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상 경비 노동자에게는 임금 상승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주민들과 더불어 오래 일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아파트 관리비 변화,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모의 시민의회 참가자 85명은 열 개의 테이블에 나눠 앉아 1) 정리해고를 통한 인원 감축 2) 정부지원을 통한 고용 유지 3) 대안마련을 통한 근본 해결 세 가지 안 중 자신의 주장을 고르고 설명을 덧붙이며 의견을 교류했습니다. 그중 몇 가지 의견을 소개합니다.

1) 주민이 인건비 상승을 부담하자

  • 김경옥

“최저임금 상승은 시대적 요구입니다. 국가 지원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결국 주민이 부담해야 합니다.”

2) 정부 지원금을 받자

  • 이율락(아파트 거주)

“우리 아파트 경비 노동자가 전부 정부 지원금의 혜택을 받게 월급을 조정해 고용을 유지할 것입니다.”

3) 정부 지원금은 공동주택과 단독주택 간 형평성 문제가 있다

  • 조미라(빌라 거주)

“빌라에는 지원이 없습니다. 아파트에만 지원해주는 것은 차별입니다.”

4) 고용형태를 바꿔 고용을 유지하자

  • 최인숙(빌라 거주)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오후 1시~3시 휴게시간을 책정했는데, 그 시간만큼은 주민 아무도 경비 노동자를 찾지 않았어요. 경비 노동자의 휴게시간을 주민이 확실히 보전해줘야 합니다. ”

  • 김소영

“아파트 경비 노동자분들이 임금 상승보다는 고용 안정을 더 원하십니다. 한 달에 한 번 휴일을 주거나 업무량이 많지 않은 주말에 돌아가면서 한 번씩 쉴 수 있도록 합시다.”

5) 상황의 변화가 아파트 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고려해야 한다

  • 이삼숙

“사실 주민들은 임금은 오른 것에 대한 불만을 일차적으로 가집니다. 따라서 이런 숙의 과정이 충분히 전달되어야 합니다.”

주거 형태별로 입장도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을 눈치채셨나요? 가령, 아파트 거주자가 아닌 사람이 "정부의 경비 노동자 임금 보조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한쪽에서 응원의 박수가 나오고, 아파트 거주민이 이에 반박하면 다른 한쪽에서 동의하는 박수가 나오는 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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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저임금 최약체인 경비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는 건 더 높은 단계의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한 발판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성북구 모의 시민의회와 같은 논의가 아파트 주민 내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정책의 취지와 실질적인 영향을 실감할 수 있겠다는 지적에도 많은 사람이 끄덕였습니다.

선택의 근거는 8가지로 정리됐습니다.(아래 그래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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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3안, ‘근무형태 조정을 통해 임금 상승보다 지속적인 경비 노동자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가 26%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습니다. ‘아파트마다 실정이 서로 달라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가 17%로 그 뒤를 이었고, ‘임금 상승에 따라 정부가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가 16%로 비슷한 선택을 받았습니다.

세 가지 방안에 대한 1차 투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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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한시적 지원금, 노동계: 직영제 or 아파트별 실정 고려, 시민사회: 월 2일 휴무일

이어진 2부에서는 정부, 노동, 시민사회 전문가가 참고인 자격으로 경비 노동자 고용 안정 방안에 대해 각 분야에서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발표했습니다.

  • 조미림(근로복지공단 서울북부지사 일자리안정자금지원사업팀 과장)

“일자리 안정자금지원 정책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됩니다. 하지만 지원금 지급 요건을 맞추기 위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거나 기존의 근로 조건을 하향하는 경우는 없도록 방법을 찾겠습니다.”

신민호(성북구 아파트연합회 사무국장) 씨는 ‘이미 경비 노동자 월급 2백만 원이 넘는 아파트의 주민들은 지원금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조미림 과장은 “고용인과 근로자가 서로 합의해 근무 형태를 바꾼다면 변경된 조건이 근로자에게 불리하다고 보진 않을 예정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 박문순(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

“정부가 최저임금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사업은 무상급식 이슈처럼 국민이 복지의 영역을 어디까지 합의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경비 노동자 일자리 지원 사업은 곧 고령자 복지 사업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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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호, 김원영 씨 등은 ‘경비 노동자에게 190만 원 이상을 줘 가면서 현행 경비원제를 유지할 곳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지문 (70대, 아파트 거주) 씨는 "경비 노동자 노동강도가 낮은데 왜 최저임금제를 적용하냐"고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 국장은 “이미 경비 노동자는 일반 노동자보다 수당을 덜 받고 있는데다 경비업법에 명시된 업무를 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실 하지 않아야 하는 택배 수령이나 청소 등의 업무까지 적용한다면 일반 노동자와 같이 취급되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 심재철(에너지나눔연구소 소장)

아파트 관리비는 인건비가 아니라 공용 전기료에 비례합니다.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는 주차장 조명과 가로등을 LED로 교체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5년 동안 공용 전기료를 30% 가량 줄였습니다. 모든 아파트도 이런 노력으로 공용 전기료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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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심재철 에너지나눔연구소 소장

주민과 경비 노동자 간 동행,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까

1차 토론에서는 참가자들이 주로 자신의 주거 형태에 따라서 정책의 영향을 어떻게 받을 것인지 궁금해했다면, 2차 토론에서는 더 근본적인 논의로 확장됐습니다. 참가자들은 전문가 발제의 도움을 받아 최저임금법과 경비 노동자 복지에 대한 의견을 내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 이준호

“시간이 지나면 관리비 인상 효과가 경비 노동자 해고로 나타날 것입니다.경비 노동자 고용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서 별도의 어르신 일자리 사업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 강수연

직영제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주휴수당 없는) 주5일제를 적용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각 아파트는 (공용 전기세 등 인건비 이외 요소를 줄여) 관리비를 줄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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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학 동아에코빌 관리소장, 박문순 민주노총 조직국장, 심재철 에너지연구소 소장은 각각의 방안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참가자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최현(아파트 관리소장) 씨는 “주민은 경비 노동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총량이 적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휴일이나 휴게시간을 주는 것은 현실에선 힘들 것입니다”라고 걱정했습니다. 서 관리소장 역시 “막상 해당 근로자가 (초소에) 없을 때 주민들의 민원이 많이 제기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심재철 소장은 "190만 원의 월급으로 경비 노동자 업무를 하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라면서 “경비 노동자를 해고하고 경비 업무를 제외한 기존 경비 노동자가 담당하던 업무에 일용직을 쓰는 것이 오히려 더 돈이 듭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상 현행 경비 노동자 고용 형태가 주민에게는 가장 많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조건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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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지문(70대) 씨는 무인경비 시스템을 주장했습니다. 김 씨는 무인경비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캐나다의 아파트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데, 그곳처럼 자동화 시스템과 일용직 전문 인력을 도입한다면 지금과 같은 경비 노동자는 아예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박문순 조직국장은 “경비 노동자가 경비 업무 이상의 포괄적인 잡무를 다 처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또한, 무인 자동화 시스템 설치 비용 10억 원이 일시금으로 들어가는 것을 고려해야합니다.”고 말했습니다. 무인 자동화 시스템보다 경비 노동자 인력을 유지하는 것이 비용 대비 편익이 더 낫다는 거죠.

내 손으로 만드는 권고안

모의 시민의회 참가자들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토론에서 지금까지 나온 논의를 바탕으로 권고안을 적어 내려갔습니다. 다음 표는 각 테이블에서 나온 권고안의 내용만 간략히 정리한 것입니다. 10장의 권고안 중 7장이 경비 노동자의 근무형태를 조정하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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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북구민 85명의 의견은 한 장의 최종 권고안으로 정리됐습니다. 김의영 임시 의장은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고, 참가자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권고안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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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2월 16일, 성북 모의 시민의회에서 도출된 경비원 고용 안정을 위한 권고문

이로써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해 무려 7시간에 걸친 토론이 진행된 끝에 성북구 모의 시민의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현행 경비 노동자의 근무 형태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선택했습니다. 경비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휴게 시간을 보장해 고용 환경의 질을 높이며 동시에 근로시간을 조정해 주민들의 임금 상승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경비 노동자 고용 안정은 고용주인 주민과 피고용인인 경비 노동자 간의 문제이며 일시적인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아파트 내에서 자치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권고안이 실행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해 당사자인 아파트 주민의 공감이 선행되어야 하므로 홍보가 중요하다는 과제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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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꾸할 필요도 없다고 여겼던 이견, 끝까지 들어보니

최인숙(60대, 빌라 거주) 씨는 ‘이 모든 논의가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가는 과정이다’고 시민의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강성길(60대, 아파트 거주) 씨 역시 참여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자신과 전혀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말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끝까지 토론하다 보면 각자 우려했던 부분이 나오고 또 해결되더라고요. 어떤 의견이든지 처음엔 다르겠지만 과정이 진행될수록 한 방향으로 모이는 걸 목격한 시간이었습니다.

아파트 주민과 경비 노동자는 법적인 고용 관계에 있습니다. 대부분 용역업체를 가운데에 끼고 있어 잘 인식되지는 않지만, 아파트 주민은 고용주로서 법적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모의 시민의회는 시민들이 생활에 바빠서 잊고 지냈던 일상 속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자리입니다. 의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의회 구성원으로서 지역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결정권자 중 하나로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성북구 모의 시민의회의 권고안은 법적 강제력을 띠진 않습니다. 그러나 이날 채택된 권고안은 각 이해당사자인 아파트 경비원, 아파트 입주자 대표, 관리소장에게 전달되었으며, 임시 의장을 맡았던 김의영 교수를 통해 성북구청장에게도 전달됩니다. 이제 이날의 토론을 기억하고 자신의 삶터로 돌아가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것은 시민의 몫이 될 것입니다.


사진=박수현, 윤지원

사단법인 징검다리교육공동체의 취재 지원을 받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