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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울여성안전설명서인가요? 남자는요?

서울시, 재난약자 여성 위한 맞춤형 재난대응 매뉴얼 제작

윤지원 2018년 01월 23일

여성 1인가구인 장유나(22) 씨가 현재 살고 있는 복층형 오피스텔에 입주한 것도 벌써 일 년 반 전이다. 이사 온 첫날, 창문가의 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줄은 로프와 벨트가 들어 있는 상자와 연결돼 있었다.

“‘이게 뭐지’ 싶어서 열어봤죠. (제가) 정확한 이름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불이 나면 혼자서 타고 내려갈 때 쓰는 도구인 것은 이해했는데 설명서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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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나 씨의 집에 설치된 완강기 사진

완강기는 오피스텔 복도에도 군데군데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장 씨는 ‘우리 건물 안에서 이 기구를 실제로 타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피스텔에서 입주자 대상 재난 대비 훈련을 한 적도 없고, 완강기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장 씨에게 재난·재해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장 씨는 화재나 지진은 평소에 뉴스에서 많이 봐서 익숙하지만 그 밖의 상황은 상상해본 적 없다고 답했다. 알고 있는 대응 방법도 ‘화재 시 절대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이용한다’ 수준의 정보라고 했다.

“최근에 지진이 잦았잖아요. 밖으로 나가야 할지 그 자리에 있어야 할지 대피 방법을 전혀 몰라서 인터넷으로 찾아봤어요. 그런데 제대로 된 정보가 별로 없더라고요. 한 네티즌이 일본에서 나온 지진 안전설명서를 번역해 올린 게시글이 있길래 그거나 읽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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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도의 방재 책자 ‘도쿄방재’. 최근 지진에 대해 높아진 관심으로 인해 일본의 안전 설명서를 한국어로 포스팅한 블로그가 많이 검색된다.

장 씨는 마지막으로 안전 관련 교육을 받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장 씨는 재난 안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있는지도 몰랐다. 재난 안전 체험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꼭 가보겠다’고 말하면서도 안전에 대해서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여성 안전권 문제의 하나, 재난 약자로서의 여성

서울시는 2013년부터 늘어나는 여성 대상 범죄에 대비해 여성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여성안심특별시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해 왔다. 이 정책은 2013년 1.0버전, 2016년 2.0 버전, 2017년 3.0버전 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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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여성가족재단 1 연구위원 김영정 박사는 지난 11월 Deepr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의 여성안심특별시 정책 1.0 버전이 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2.0 버전은 안전 문제의 당사자이자 재난 약자인 여성이 재난·재해 상황에서 대응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참고기사 ‘남자 신발 두기’는 여성 자취 꿀팁이 될 수 없다

서울시는 15일 여성안심특별시 3.0 정책의 하나로 ‘서울여성안전설명서-재난재해 대응 입문편’을 발간, 배포했다. 서울시 여성정책담당 권진영 주무관은 ‘서울여성안전설명서’는 “재난 안전교육을 접할 기회가 적고 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성을 위해 제작된 자료”라고 소개했다. 해당 링크로 들어가면 누구든 무료로 PDF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다.

권 주무관에 따르면 이 서울여성안전설명서는 여성안심특별시 2.0 버전에서부터 계획됐다. 여성 관점에서 안전 매뉴얼이 왜 필요한지, 기존의 매뉴얼은 어떤 점에서 취약한지부터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책자가 만들어졌다.

서울여성안전설명서는 서울에서 발생 빈도가 높거나 발생 시 피해가 큰 재난재해인 화재, 지진, 태풍·홍수, 지하철 사고, 붕괴를 ‘5대 재난재해’로 정리해 약 50쪽에 걸쳐 대처 방법과 대비요령, 주의사항 등을 소개한다. 각 재난재해에 대한 대응법 뒤에는 가정 내에서 대비할 수 있는 점검법과 비축 물품 목록 등과 기본적인 소방안전 정보가 실려 있다.

재난 상황 시 영유아와 아동이 받는 스트레스, 외상 후 스트레스에 성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와 간이 기저귀, 간이 면 생리대 만드는 방법 등을 포함한 것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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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울‘여성’안전설명서인가요? 남자는요?

안전은 여성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중요한데, 특별히 여성만을 위한 재난 대응 매뉴얼을 만든 이유가 뭘까. 권진영 주무관은 이렇게 설명한다.

재난재해는 성별을 막론하고 일어나지만, 준비 대응에 따른 결과는 상당히 달라집니다. 기존에 만들어진 안전 매뉴얼은 많지요. 제가 반대로 기자님께 여쭤볼게요. 재난재해에 따른 안전 매뉴얼을 읽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여기서 기자는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교복을 입었을 때 어렴풋이 안전 교육을 받았던 것도 같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서울여성안전설명서는 여성이라는 타깃 독자층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 붙였지만 남성분들도 충분히 보실 수 있겠죠.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재난 약자인) 여성분들께서 꼭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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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재해 발생 결과를 보면 여성들의 피해가 남성들보다 많다는 것은 여러 조사에서도 밝혀졌습니다. 남성은 민방위 훈련 등 의무적으로 받는 안전 훈련을 받을 기회를 접할 수 있는 데 비해 여성들은 그런 기회가 적습니다.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초적인 초기 대응만 잘 해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유사시에 당황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올바른 대응을 할 안내가 필요하겠다는 취지에서 제작됐습니다.”

안전 교육과 훈련에 대한 접근성도 문제지만, 현재 통용되는 매뉴얼이 실제 현장에 있는 여성에게 적합한지도 문제다. 권 주무관은 같은 대응법이라고 해도 사용 주체가 아이, 여성, 노약자, 남성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며, 일괄적으로 표준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지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8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발표한 교육자료에 따르면 성인지적 관점은 '여성과 남성은 다른 이해나 요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특정 개념이 특정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성역할 고정관념이 개입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검토하는 관점'이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임산부, 돌봄 노동을 하는 여성, 노약자 등으로 나눠 각각 다른 안전 대응법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실상은 각자에 맞는 대응법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다고 한다. 권 주무관은 “사실상 고령 노인은 재난재해 발생 시 스스로 하는 대응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령자의 경우 재난재해 현장에서 구조대가 오기까지 안전한 곳으로 피난해 있는 것 이상의 적극적인 방법이 도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꼼꼼히 챙긴 여성 맞춤 정보

그런 아쉬움은 ‘대피 시 주의사항 - 특히 재난에 취약한 상황이라면 이렇게 대처하세요’ 카테고리에 넣었다. 5대 재난재해 파트마다 앞부분에는 일반적인 여성의 대응방법을, 뒷부분에는 임산부나 아이돌봄 여성, 고령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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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고령 여성 1인가구는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크기 대문에 단독경보형감지기만 설치해도 화재를 초기에 감지해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빨라진다. 이런 식으로 각 장마다 세세하게 안전 취약 계층에 대한 정보를 담은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풍수해의 경우 사후 대응법에 그치지 않고 국가에서 보험료를 일부 지원해주는 보험 지원사업과 서울시에서 무료로 침수 방지 시설을 설치해주는 예방 지원사업 내용을 담았다. 간단하게 신청 방법과 장소 등을 명시해 기존에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도 각 동이나 자치구에서 추가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타깃 독자층인 여성 맞춤형 정보를 꼼꼼하게 챙겼다. 불이 났을 때 수건이나 손수건에 물을 묻혀 코와 입을 막으라는 것은 전국민이 알고 있는 대응법이다. 비상시 여성의 경우 수건을 찾기보다 입고 있는 브래지어를 벗어 사용할 수 있다. 안전한 상황에서야 당연하게 읽히는 대목이지만, 막상 닥친 위급 상황에서는 우왕좌왕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넣은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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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쪽에 실려 있는 민방공 경보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다. 민방위 훈련에 접근 기회가 적은 여성들이 민방공 경보가 울렸을 때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했다.

권 주무관은 “민방위 훈련 때 시민들이 무관심하거나 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문제는 이미 기사로도 많이 지적됐습니다. 서울은 전쟁 발발 시 주요 타깃이 되는 지역입니다. 그런 만큼 유사시 발령되는 민방공 경보 사이렌에 대해 알고 계셔야 합니다."라고 강조하는 한편, "더 관심 가질 분들을 위해 국민재난안전포털 사이트에서 실제 소리를 들을 방법도 소개했습니다.”고 설명했다.

경험만큼 효과적인 대비는 없습니다

권 주무관은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

“전문가 감수를 받을 때도 실제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책자를 읽고 나서 꼭 안전체험관이나 소방서에서 하는 학습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책자 44쪽과 45쪽의 ‘미리 체험합시다’에는 서울시 재난 안전 체험관 두 곳과 응급 처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전국 소방본부 및 소방학교 26개의 목록이 실려 있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광나루 안전체험관보라매 안전체험관은 상시 체험 신청을 받는다. 보통 아이가 있는 가족 단위나 학교,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에서 안전 교육을 받으러 온다고 한다.

하지만 20, 30대 여성들이 친구들끼리 주말에 체험관에 안전 교육을 받으러 가는 모습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이에 서울시는 3월 8일 여성의 날을 전후한 3월 6일부터 9일까지 일반 여성과 여성단체 등을 대상으로 한 ‘여성안심 재난체험 주간’을 운영한다. 체험 교육을 한 번 받는 데에는 3시간이 걸린다. 아이를 돌보는 여성들의 경우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고 올 수 있는 낮 시간대를 활용하도록 진행할 예정이다.

‘자취녀 꿀팁’으로 이 책자가 많이 알려졌으면

Deepr지난 기사는 '여자 혼자 자취를 시작한다면?’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21가지의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여자가 해야 할 것’을 소개한 페이스북 게시글로 시작했다. 사람들의 많은 공감을 얻은 상위 댓글은 ‘왜 여자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냐’며 게시글의 잘못을 꼬집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밑으로 달린 많은 댓글은 친구를 태그하며 조심을 당부하거나 게시글에 나온 남성용품을 빌려달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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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일까? (좌) '여자 혼자 자취를 시작한다면?’ (우) 서울여성안전설명서

여자가 혼자 자취를 시작한다면 가장 먼저 알려줄 정보는 남자 구두와 제복을 현관에 두라는 조언이 아니다. 혼자 집에 있을 때 불이 난다면 어떻게 초기에 불을 잡아야 할 지, 지진이 나서 집에 갇혔다면 구조대가 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야하는지, 방이 침수됐을 때 어떻게 피해야 할 지다.

기사를 다 읽으셨나요? 당신의 다음 반 발짝을 고민해 보세요.
✔ 서울여성안전설명서를 다운로드 받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세요. 누구든 무료로 pdf 파일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책자를 읽은 뒤 직접 안전 교육 체험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광나루 안전체험관과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 체험을 신청해보세요.
✔ 3월 6일부터 9일까지 열리는 '여성안심 재난체험 주간'에 참여해보세요. (2월 중으로 정확한 자료가 보도될 예정입니다.)
✔ 왜 여성이 재난 약자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다음 연구자료를 참고하세요. 김동식, ‘여성의 재난역량 실태와 정책과제, <젠더리뷰> 2016년 겨울호


cover=서울시여성안전설명서 30쪽 캡쳐


  1. 김영정 박사의 소속을 ‘서울시여성가족복지재단’에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으로 바로잡습니다. (수정: 2018년 1월 29일 1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