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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지방정치리포트 프롤로그]기억의 도시 베를린

곳곳에 죽음을 박아둔 나라가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방법

정인선 2018년 01월 31일

가기도 전에 만들어진 베를린 첫인상: 암펠만 아저씨

굿즈를 좋아한다. 가방에 뱃지를 달거나 노트북에 스티커를 붙이는 간편한 방법으로 내 취향과 가치관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그 중에서도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대해 내가 갖게 된 첫인상도 먼저 베를린에 다녀간 친구들이 사다준 굿즈 덕분에 만들어졌다. 암펠만(Ampelmann) 아저씨. '신호등(ampel)'과 '사람(mann)'이란 뜻의 두 단어를 더한 말이다. '미스터 신호등'이라는 뜻이다.

한국보다는 짧지만, 독일도 분단을 경험했다. 암펠만은 분단 시절 동독 지역의 신호등에 쓰이던 기호다. 통일된 후에도 구동독 지역의 상징 같았던 신호등 기호를 없애지 않고 활용했다. 아이들이 자주 보는 TV 만화영화 주인공으로 암펠만을 등장시켜 교통신호를 교육하는 용도로도 사용했다. 사소하지만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듯 통일이 이뤄진 이후 구동독 출신 시민들이 느낄 수 있는 박탈감을 조금이나마 더는 데 기여했다. 이젠 '독일 통일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더해져 베를린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다. 베를린 시내 곳곳엔 암펠만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어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image 구동독 시절의 신호등 기호를 그대로 남긴 '미스터 암펠만'은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베를린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Ampelmann Berlin 인스타그램

image 베를린 운터 덴 린덴 가의 암펠만 플래그십 스토어. 캠핑용 의자, 물병, 가방, 수건 등 암펠만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기념품이 전시돼 있다. 사진=정인선

지난해 9월에 이어 베를린에 두 번째로 다녀왔다. 사단법인 정치발전소의 '독일 민주주의 기행 시즌3' 프로그램을 통해 독일의 정당, 노동조합, 시민단체, 지방정부 등을 방문했다. 지난 여행이 독일 총선 풍경을 둘러보기 위한 여행이었다면, 이번엔 독일의 지방정치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들여다봤다. 각각 일주일, 열흘씩 머무른 걸 갖고 베를린은 어떠어떠한 도시라고 정리하기엔 짧지만, 인상을 한 마디로 남긴다면, '베를린은 기억의 도시'라고 정리하고 싶다. 분단 시절의 기억을 도시에 위트 있게 남긴 암펠만이 그 상징 가운데 하나다.

두 번째 첫인상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천주교와 기독교가 공존하는 독일에선 크리스마스 시즌에 곳곳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선다. 우리 일행이 베를린에 도착한 다음 날인 1월 6일 토요일은 크리스마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기 위해 베를린 시내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는 장소 중 하나인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앞 광장으로 향했다.

image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앞에 세워진 크리스마스트리. 사진=김설

곰인형 모양의 양초, 얼굴만한 크기의 초콜릿 등 다양한 크리스마스 소품 덕에 해를 넘겼음에도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켓에 나와 계피, 과일 등을 넣고 끓인 독일식 뱅쇼인 글루와인(Gluhwein)을 마시고, 베를린의 대표 길거리 음식 커리 부어스트(‘wurst’는 소시지, Currywurst는 소시지에 커리가루를 뿌려놓았다는 뜻이다.)를 먹으면서 연휴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었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는 빌헬름 1세가 신성로마제국 이후 여러 군소 국가로 분열돼 있던 독일 지역을 하나로 통일한 것을 기념해 1895년에 세운 교회다. 베를린의 여러 오래된 건물과 마찬가지로 이 교회 건물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손됐다. 파손된 건물을 크게 보수하지 않고 남겨 둬, 드나드는 사람들이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게 했다.

image 카이저 빌헬름 교회 구관 내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형형색색의 성화 사이사이 파손된 걸 메운 굵은 금이 보인다. 사진=김명환

image 통유리창을 통해 교회 건물 안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이 있는 대로 쪽이 내다보인다. “관광지가 아닌 추모의 공간입니다”라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은 교회 구관 내부와 바깥의 풍경이 크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진=김명환

image 구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맞은편의 신축 교회 건물로 들어서자 다시 바깥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작아지고, 오르간 소리가 귀를 채웠다. 푸른 빛을 뿜어내는 스테인드글라스와 소박한 십자가상이 구관과는 달리 바깥과의 단절감을 가져다줬다. 사진=서지원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신관 건물 밖으로 돌아 나왔다. 빨간 초와 꽃, 영정사진이 놓인 얕은 계단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계단에 금박으로 죽은 사람들의 출생 연도와 이름, 출신 국가가 쓰여 있었다. 2016년 12월 19일, 크리스마스를 6일 앞두고 벌어진 트럭 테러에서 사망한 12명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을 처음 선보인 날 베를린 시장인 미하엘 뮬러가 와 추모사를 했고, 많은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다.

image 2016년 12월 19일, 크리스마스를 엿새 앞두고 일어난 트럭 테러에서 12명이 사망했다.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건물 뒤편 계단에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사진=서지원

크리스마스가 이 주나 지난 연휴 끝물에도 이렇게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마켓이 얼마나 붐볐을지, 그리고 트럭이 그 위를 밀고 지나간 뒤 현장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가늠이 잘 안 갔다.

사고가 벌어진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추모객들이 오갔다. 함께 온 독일 교민이 땅바닥을 손으로 가리켰다. 교회 외벽에서부터 인도 바깥 차도가 있는 곳까지, 굵은 금박 선이 삐뚤빼뚤하게 그어져 있었다. 트럭이 사람들을 밀고 지나가면서 독일 사회에 낸 균열을 그대로 땅 위에 박아 놓은 거였다.

image 땅에 굵게 새겨진 아픔의 흔적은 시민들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사진=정인선

사람들은 익숙한 듯 금박 선 위를 밟고 지나다녔다. 추모객과 관광객이 딱히 나뉘지 않고 한데 섞여 있었다. 추모의 공간은 비상의 공간이 아니었다. 감추거나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는 방식. 그렇다고 타인의 죽음을 신성시하지도 않는 방식. 이 도시가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일행 가운데는 2000년대 초반 광주시 의원을 지낸 윤난실 광주 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장이 함께했다. 윤 센터장은 “광주에서는 5.18 당시 파손된 전남도청 청사 외벽을 보존할지를 갖고 거의 10년을 싸웠다”라고 했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무대, 장벽공원

다음 날인 1월 7일 찾은 마우어파크(Mauerpark)는 말 그대로 장벽 공원이다. 매주 일요일이면 베를린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벼룩시장이 선다. ‘이런 걸 누가 사나’ 싶은 물건들 사이사이로 개성 있는 수공예품과 빈티지 의류들이 빛난다. 빈티지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개미지옥 같은 곳이다.

봄, 여름, 가을엔 벼룩시장 옆 잔디 광장에서 야외무대가 펼쳐진다(현지 사람들은 ‘가라오케’라고 부른다). 한때 베를린 장벽이 가로지르던 곳이지만, 벼룩시장이나 그 옆 잔디 광장이나 모두 돈 없는 젊은 예술가들이 무대로 삼는 공간이 됐다.

image 마우어파크 벼룩시장의 한 빈티지 시계 점포. 사진=정인선

image 왼편에 작게 보이는 흰색 천막이 마우어파크 벼룩시장의 일부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켓이 펼쳐진다. 따뜻한 계절엔 사진 중앙의 잔디밭에서 가라오케가 열린다. 사진=김명환

마우어파크에서 전차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면 장벽기록물센터(Documentation Center)가 나온다. 그 대각선 건너엔 가운데가 반으로 뎅강 잘린 것 같은 아이보리색 빌라가 있다. 빌라 벽엔 사람들이 담을 넘는 사진이 판화처럼 박혀 있다. ‘모퉁이길(Ackerstraße)’이라는 길 이름과 함께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해인 1961년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image 장벽기록물센터 위에서 내려다본 옛 베를린장벽의 흔적. 장벽을 기준으로 뒤쪽이 옛 동베를린, 앞쪽이 서베를린 지역이다. 사진=김명환

붉은색 철로 된 옛 장벽 골조물 안쪽 잔디밭이 있는 방향이 옛 동베를린, 바깥쪽(도로 방향)은 서베를린이다. 장벽 골조물 바로 앞, 옛 서베를린에 속했던 구역이 막 시작되는 곳에는 작은 동판이 여럿 박혀 있다. 동판에는 누군가의 이름과 사망 일자가 쓰여 있다. 잔디밭 안쪽 빌라 벽에 새겨진 사진에서처럼 장벽을 넘어 서베를린으로 건너오려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다.

image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 사진=김명환

image 서베를린을 기준으로 장벽 안쪽 곳곳에는 장벽을 넘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사망 일자가 적힌 표식이 있다. 루돌프 어반은 장벽이 세워진 지 6일 뒤인 1961년 8월 19일에 서베를린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부상을 당했다. 약 한 달 뒤인 1961년 9월 17일 폐렴으로 숨졌다. 그는 장벽을 넘다 희생된 네 번째 동독인이었다. 사진=김설

장벽이 서 있었던 곳이라면 베를린 시내 어디에서건 정사각형 타일을 이어붙인 경계선 표식을 찾아볼 수 있다.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이 살던 집이 있던 자리에도 마찬가지로 바닥에 ‘누구누구가 살던 집’이라는 표시가 박혀 있다. 희생자의 이름을 따 거리 이름이 지어지기도 한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 성곽 있던 자리’, 또는 ‘국가 유공자의 집’이 서울 곳곳에 표시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image 베를린 로젠탈 가(Rosenthal Straße)의 어느 집 앞에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희생된 유대인 가족이 살던 집이라는 표식이 새겨져 있다. 이 가족의 이름을 딴 ‘로젠탈’이 거리 이름으로 지어졌다. 사진=손어진

한국에선 ‘서울 성곽’과 같은 비정치적인 역사의 흔적만이 시민과 호흡하는 도시 유산의 지위를 누린다(그러나 권위적인 모습으로 도시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다). 트럭 테러처럼 일어난 지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비극이건, 아니면 베를린 장벽과 같이 30년 된 비극이건 모두 베를린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놓여 기억과 성찰을 돕는다.

image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브란덴부르크 문, 파리저 광장, 소니센터 등이 인접한 중심가에 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서지원

image 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을 따라 난 길의 이름은 전체주의의 비극을 막을 방법은 끊임없는 사고뿐임을 주장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이름을 따 지었다. 사진=김설

‘독일인들을 위해’와 ‘모든 시민을 위해’의 차이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의사당인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Deutscher Bundestag)은 1800년대 지어진 제국의회(Reichstag) 건물을 고친 건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폭격으로 크게 파손됐던 걸 통일 이후 리모델링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image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 주변에는 담장이 없다. 사진=서지원

image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에서 내려다본 공화국 광장(Platz der Republik). 볕이 좋은 계절엔 시민들이 일광욕을 즐기는 휴식처 역할을 한다. 사진=서지원

연방의회 의사당 북쪽 건물의 외벽과 안뜰에는 각각 ‘독일인들을 위해(Dem deutschen Volke)’와 ‘모든 시민을 위해(Der Bevölkerung)’라는 말이 쓰여있다. 안뜰에 식물과 돌로 장식된 ‘모든 시민을 위해’라는 글씨는 예술가 한스 하케(Hans Häcke)에 의해 2000년에 만들어진 조형물이다. ‘독일인들을 위해’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전체주의적, 민족주의적 정서를 덜어내려는 것으로, 인종, 출신 국가, 정치적 입장 등과 관계없이 독일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시민이며 그들을 위해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Der Bevölkerung’이라는 글씨는 의사당 건물 어느 층에서나 내려다보인다. 당선된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흙을 퍼다가 풀이 자라는 글씨 옆에 갖다 부어야 한다. 또 매년 봄 다양한 풀의 씨앗이 무작위로 뿌려진다.1 이 역시 다양성을 상징하는 의미일 것이다. 옛 제국의회 건물을 리모델링했다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그냥 둬도 될 법도 한데 굳이 잘못을 되풀이할 가능성에 경고를 보내는 예술작품을 설치한 데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image "독일인들을 위해(Dem deutschen Volke)" 사진=서지원

image "모든 시민을 위해(Der Bevölkerung)" 사진=정인선

정치발전소 일행이 많은 유럽 국가 중 독일을 계속해서 찾는 건 그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하는 방식에서 뭔가 배울 게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다당제, 정당 간 협상과 연정, 철저한 지방분권 등 흔히 '합의제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독일식 민주주의 제도의 여러 요소는 모두 전쟁과 학살, 분단 등으로 대표되는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의지가 모인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image 정치발전소 독일 민주주의 기행 시즌3의 주요 일정표

9박 11일의 일정동안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할 계획이다. 짧은 방문을 통해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어도, 코끼리의 다리 한쪽이라도 만지고 돌아온 것이었으면 좋겠다.


  1. wikipedia, Der Bevölkerung (https://de.wikipedia.org/wiki/Der_Bev%C3%B6lker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