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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 경력도, 전문직 타이틀도 없이 정치에 입문하려면?

밀레니얼의 덕업일치 청년정치가 특별편(2) 김승현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회 강서을 출마예정자

정인선 2018년 02월 14일

몇 년 전의 일이다. 수년 동안 서로 연락 없이 지내던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언을 구할 것이 있다며 식사를 하자고 해서 나갔다. 후배는 기자가 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준비를 시작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아직 시험에 붙은 건 아니었지만 조금 먼저 기자 시험 준비를 시작한 입장에서 성심껏 조언을 해 줬다.

식사가 끝날 때쯤 후배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기자가 되고 싶어?’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사실 기자보다는 정치인을 하고 싶어요.”
“응? 그러면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하거나 국회 보좌진으로 경험을 쌓아 볼 생각은 안 해봤어?”
“지금 있는 정당들은 다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그리고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보면 법조인이나 언론인 출신이 많잖아요.”

선거철마다 법조인, 교수, 언론인 등 정치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사람들을 수혈하듯 모셔오는 정당들의 모습이 후배에게도 ‘정치인이 되려면 우선 다른 분야의 전문직이 되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것 같았다.

지난 2월 8일 서울 중구의 한 공유오피스에서 만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회 강서을 출마예정자 김승현 씨는 달랐다. ‘학생운동-시민사회-정계 입문’ 혹은 ‘‘사’자 직업 전문직-거대 정당의 공천-국회 입성’이라는 보편적인 경로 대신, 직업 정치인이 되기 위해 정당과 의회 안에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가는 사람으로 보였다.

“제가 청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천을 받고 싶지는 않아요.” “단계를 밟아 나가는 사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선거가 되기를 희망해요.” “저는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의 정치인은 아닌 것 같아요.” 신선함, 도전정신, 무모함, 발칙함 등 그동안 언론이 주목했던 청년 정치인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학생운동 경력도, 전문직 타이틀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에 입문하나요?

김승현 씨는 모범생 스타일이다. 3수를 해 2008년에 서울 한 대학 신학과에 입학했다. 남북 청년합창단, 교육 봉사단체 등을 만들어 굴리느라 단과대 학생회에 잠깐 몸담은 걸 빼곤 이렇다 할 학생운동 경력도 없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87년 이후에 태어나 독재를 경험하지 않은, 민주주의가 디폴트인 세대다. 이들이 주도권을 잡는 시대엔 ‘정치인’ 하면 떠오르는 강력한 카리스마뿐 아니라 다른 자질이 요구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의 가치관을 정립해 보고자 신학과에 갔다. 정치학을 이중전공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물었다. 정치와 신학은 너무 다르지 않냐고. 하나는 막 경건해야 할 것 같고 하나는 더러울 것 같은데 어떻게 같이 공부할 생각을 하냐고. 나는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 목사나 정치인이나 똑같다고 봤다.”

보통 대기업에 입사한다고 하면 학점 잘 받아 놓고, 토익 시험 준비하고, 공모전에 몇 번 나가고, 해외 어학연수 다녀오고, 인적성 시험을 준비하는 등 ‘커리어 패스’가 머리에 떠오른다. 반면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20대인 지금 뭘 해야 하지?’ 하고 생각해 보면 특별한 경로가 떠오르지 않는다. 직업 정치인이 되기 위해 김승현 씨는 어떤 경로를 밟고 있을까.

“4학년이 되니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을 했다.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고시 공부를 해 합격을 하거나 기자가 된 친구들도 있었다. 고민해 보니 (함께 일할) 실무자의 마음을 모르고서는 나중에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학년 2학기 기말고사 기간 직전에 국회 입법보조원 자리에 지원했다. 입법보조원은 무급이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 ‘아무리 네가 정치를 하고싶다고 해도, 서울에서 그런 좋은 대학 나온 애가 무급으로 간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는 거였다.”

'4년짜리 비정규직'에서 '재선 비서관'으로

국회 입법보조원이 된 김 씨는 3개월을 매일같이 야근하며 일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다른 의원실에서 ‘쟤 열심히 한다더라’하고 유급 인턴 비서로 데려갔다. 그 의원실에서 인턴에서부터 9급 비서, 7급 비서, 그리고 5급 비서관까지 차례로 승진했다. 당시 김 씨는 만 스물일곱이었다.

“주변의 우려가 컸다. 나부터도 의원에게 “나이가 너무 어리니 나중에 비서관을 시켜달라”고 했다. 세 번을 거절했는데도 계속 말씀하셔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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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을 앞두고 김 씨의 ‘사장님’(국회 보좌진들은 자신이 속한 의원실의 의원을 ‘사장’이라고 부른다.)이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국민의당으로 옮겨 갔다. 김 씨는 그때 “죄송하지만 민주당에 남겠다”고 하면서 의원실을 그만뒀다.

국회 보좌진들은 의원의 거취나 재선 여부에 따라 자신의 거취 또한 달라질 수 있는 업무의 특성을 두고 ‘4년짜리 비정규직’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모시는 의원의 행보에 따라 앞날이 달라진 게 김 씨 역시 막막하진 않았을까?

“그냥 대학원이든 뭐든 공부나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충남 아산에서 당선된 강훈식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가 “그러지 말고 나를 좀 도와 달라”해서 아산에 바로 내려가 3~4개월을 살았다. 선거에서 이겨 다시 5급 비서관으로 국회에 갔다. 국회에선 대를 넘겨서도 비서관 자리를 지내는 걸 ‘재선 비서관’이라고 하는데, 그 재선 비서관이 된 거다. 그러다가 ‘이제는 진짜 공부를 가야겠다’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의원실을 그만두고 유학 준비를 했다.”

미국의 대학원 두 곳에 합격해 어딜 갈지만 고르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국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이 되면서 대선 국면이 시작됐다. 당에서 선거를 함께 치르자고 제안이 왔다. 김 씨는 다 닦인 안전한 길 대신 다시 새로운 길을 택했다.

"쉬운 길로 정치인이 돼선 안 되겠구나"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 소속으로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특히 호남 지역을 많이 다녔다. 당시 유세를 다닌 지역의 국회의원들은 모두 국민의당 소속이었지만, 바닥 민심은 모두 민주당 편이었다. 국민의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메시지와 동네 시장에 있는 아주머니, 할머니의 말 사이에 괴리가 너무 컸다.

그걸 보면서 ‘아, 어쩌면 내가 민주당의 중앙 조직에서 커서 유학을 다녀와서 한 번에 공천을 받아서 한 번에 국회의원이 된다면 이런 모습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지역의 유지나 오피니언 리더들의 말만 듣고 민심을 판단하는, 눈과 귀가 닫힌 상태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대선 기간동안 많이 하게 됐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기존에 민주당의 ‘텃밭’이라 여겨져 온 호남 지역의 표를 싹쓸이하고 제3당 자리를 다졌다. 웬만해선 깨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양당 구도를 국민의당이 깨고 다당 구도를 안착시킬 수 있을지 기대가 모였다. 바른정당의 탄생 역시 유권자들의 기대를 더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두 당은 몸을 합치기로 했다. 지난 13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바른미래당’을 공식 출범했다.

김 씨는 대선 기간 동안 현장 민심과 정치권 사이의 괴리를 느꼈다고 말한다. 이때의 경험으로 김 씨는 ‘선출직 정치인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마침 바로 다음 해인 올해 6월 지방선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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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대선이 끝나고 난 뒤 6월, 7월까지 거의 두 달 반 동안 그냥 유학을 다시 갈까, 아니면 다른 방식을 선택할까를 두고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결론을 내렸다. '지방의회부터 정말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그런 자리에 한번 서 보자, 지역 민심에 훨씬 가까운 이야기를 내가 한 번 들어보자' 하고 7월에 결심을 해서 그때부터 선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광역의회는 국회의 축소판, 실무 경험이 큰 자산

김 씨가 생각하는 자신의 강점은 어디에 있을까. 김 씨는 국회에서 쌓은 실무 경험을 꼽았다. “서울시의회와 같은 광역의회는 사실상 크기가 조금 작아진 국회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도의회나 시의회 의원은 할 수 있는 일이 엄청 많고 권한도 세다. 그리고 해야 할 일도 실제로 많다. 그런데 시의원은 보좌진을 둘 수 없다. 시의회 안에 전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의원 두 사람 당 한 명을 둘 수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실무 능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아젠다를 직접 세팅하고, 핵심이 될 만한 조례를 생각해 내고, 어떤 예산을 올리고 내릴지 결정하는 그 순간순간에는 도움받을 사람 없이 모든 걸 혼자서 해내야 한다.

기본적으로 국회에서 보좌진이 하는 역할은 이렇다. 일 년 3백 4십 조 이상의 국가 예산 전반에 대한 예결산에 참여해 본다. 또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정책 질의서를 쓰고, 언론과의 접촉도 직접 해 본다. 자신과 의원이 가진 생각 혹은 추진 중인 법률안과 관련된 토론회를 개최해 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소위 말하는 일이 한 바퀴 돌아가는 순서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시의원도 30조에 달하는 시 예산을 컨트롤해야 하는 자리다. (국회에서의) 실무 경험을 꼭 갖춰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 씨가 자신을 ‘청년 후보’라고 강조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인지 궁금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콘텐츠와 메시지가 중요하지, 내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혹은 청년이기 때문에 공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이라는 이유로 공천 가산점을 조금 더 주고, 그걸로 한두 석 정도 주는 것으로 퉁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후보 자격을 달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선거가 끝날 때마다 당이 쪼개지고 합쳐지는 걸 반복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당의 정체성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공천 과정에서 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민주당의 정책연구기관인 민주연구원의 객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정책 자료와 조사 자료를 접했다. 현재 우리 당이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성, 그리고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몸으로 체화해 내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에 관심 덜한 세대를 밖으로 이끌어내려면

김 씨는 최근 'the300'과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에서 잘 훈련받은 청년이라도 자기 지역으로 와서 지방선거를 준비하게 되면 다시 시작이다. 지역 유지들의 인지도를 따라잡기는 어렵다”라고 정치 신인으로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씨는 지역에서 이미 탄탄한 지지 기반을 가진 현역 정치인들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불평등, 그 중에서도 교육 불평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작년에 강서구 내에 특수학교를 짓는 문제를 가지고 갈등이 컸다.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헌법에 보장된 장애아동들의 교육받을 권리에 찬성한다’라는 내용의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또 지역에 특수학교가 지어져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교육부 연구용역 자료 내용을 홍보했다. 장애 아동 학부모들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성엽 위원장을 만나 면담을 하고 정부로부터 특수학교 건립 약속을 받아낼 수 있게 돕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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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나 포털 댓글 창에만 젊은 사람들이 있고, 실제로 오프라인 정치 모임 공간에선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정치권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됐는지 굳이 꼽아 본다면, 실제로 지역 내에 정치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등 현역 정치인들이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한 발 빠져 있으려 하기 때문이다. 꼭 강서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치적 갈등에는 찬반이 있고, 거기에 손을 담그는 순간 반대자들이 생기는 걸 우려하게 된다. 현장에서 이슈를 갖고 싸우는 동안 보이지 않던 현역들은 마치 자신들이 역할을 다 한 것처럼 결론을 내린다. 젊은층의 공감을 끌어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세대는 독재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민주주의에 관심이 덜하다. 가치보다는 자기 삶에 와 닿는 이슈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어, 이 모임 나갈 만 한데’ 하고 청년들이 나올 수 있다. 지역에서 뜻이 맞는 사람과 책을 함께 읽고, 음악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하고, 마음 건강, 몸 건강 등을 위한 홈 트레이닝 등을 주제로 모임을 가지면서 꾸준히 접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생활과 밀접한, 그리고 내가 평상시에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정치 모임들이 앞으로 많이 생겨나야 궁극적으로 정치 결사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기초∙광역의회 의원도 후원회 구성할 수 있어야

앞서 만난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처럼 소수 정당 소속은 아니지만, 돈 문제는 김 씨에게도 큰 걱정거리다. 여당 소속이지만 인지도뿐 아니라 조직력과 자금 동원력도 현역 정치인들보다 뒤질 수밖에 없다.

“‘네가 서른두 살인데 기초의원도 아니고 광역의원으로 출마하는 걸 보니 있는 집 자식이구나?’ 하고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다. 사실 그렇지 않다. 삶을 꾸역꾸역 짜내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최대한 돈이 덜 들면서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동 킥보드에 번호를 붙여서 확성기 하나 들고 돌아다닌다거나, 자전거를 쓴다거나 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유세차를 쓰는 순간 몇백만 원이 깨진다.

선거자금을 현금으로 몇천만 원씩 쥐고 시작한다는 게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기초의회, 광역의회 의원은 현행법상 후원회를 구성할 수 없어, 지지자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모을 수 없다. 실제로 법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국회의원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 만약 내가 그런 걸 바꿀 수 있는 자리에 가게 된다면 시의원과 구의원이 다른 직업과 겸직을 못 하도록 금지하고, 대신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경쟁자로 여기기보다) 내 경쟁력을 내가 쌓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단계를 밟아 나가는 사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선거

김 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솔직한 마음으로 ‘이야기가 될만한 인상적인 장면이 부족한데 어쩌지?’하고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대화를 곱씹을수록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교과서 같은 면이 직업 정치인 김승현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지방의회 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은 대부분 청년 시절부터 당 안의 조직에서 작은 자리를 맡아보며 정치적 훈련을 거듭해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당원들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경험과 능력을 검증받아 온 젊은 정치인들의 존재가 부러웠다. ‘혹시 이번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 뒤의 진로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대한 김승현 씨의 답변을 듣고는 독일 시민들에 대한 부러움이 조금 가셨다.

30년, 40년 정치를 할 생각으로 발을 들였기 때문에 아마 정치를 계속할 것이다. 당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볼 수도 있고, 한 2년 정도는 실력을 쌓는 과정으로 삼아 공부를 더 해볼 생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하고 싶지는 않다.

보좌진으로 치러 본 선거에선 매번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이번 선거처럼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선거에 도전하는 것은 처음이다. 지역을 다녀 보면 더불어민주당 자체의 상황은 나쁘지 않은 걸 느낀다. 예전에는 명함을 드리면 관심을 갖지 않는 분이 많았는데, 요즘은 ‘어, 얘는 민주당에서 나왔다는데 뭐 하는 애지?’하고 한 번씩 훑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그렇지만 현재의 높은 대통령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에 갇히기보다, 더더욱 좋은 후보,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다시금 인증을 받을 수 있다. 국민들이 한 번 손을 들어줬다고 해서 안일하게 대처해선 안 된다. 차근차근 준비해 온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때, 그런 사람들이 당에도 헌신하고 공헌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단계를 밟아 나가는 사람이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선거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