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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서울시장 선거 벽보로 본 시대정신

우리의 시대는 어떤 정신을 품었나

정치발전소 2018년 05월 25일

사단법인 정치발전소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에서 기고해주신 글 입니다_Deepr

'대선으로 통하는 관문'

서울시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구 1000만의 서울을 관할하며 서울시장을 역임한 인물이 추후 국무총리, 대통령 등의 주요 요직을 맡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선 1기 시장이었던 조순, 고건 서울시장이 대선주자로 부상한 바 있고 지난 3월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 관선 시장이었던 윤보선 전 대통령도 서울시장 출신이다. 서울시장 자리를 두고 정당 간 치열한 자존심 대결이 펼쳐지는 이유다.

유권자와 차기 지도자의 ‘오작교’인 선거 벽보 역시 후보 간 경쟁 무대였다. 역대 서울 시장 후보들이 민심과 표심을 두루 잡기 위해 어떤 벽보를 내놓았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알아봤다.

제1회 지방선거, “서울 삼국지”

image 제1회 지방선거 서울시장후보 포스터.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

“새로나는 서울 시원하게! 깨끗하게! 편안하게!” 정원식(민주자유당)
“서울 포청천' 경제시장 조순, 서울을 바꿉니다” 조순(민주당)
“서울을 시원하게!” 박찬종(무소속)

19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같은 해 6월 17일 제 1회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1987년 민주화와 문민정부 탄생 이후 치러진 첫 지방선거인 만큼 국민적 관심도 뜨거웠다. 서울시장 선거는 정원식·조순·박찬종 후보의 3파전 양상으로 이른바 ‘서울삼국지’라고 불렸다.

1회 지방선거를 둘러싼 맥락은 복합적이었다. 김영삼 정부 3년 차에 실시됐던 터라 중간평가 성격이 짙었고 3金(김대중·김영삼·김종필)의 대리전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라 김영삼 대통령이 미국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선에서의 세대교체를 주장하면서 ‘세대교체론’이 화두로 떠올랐다.

선거의 의미가 다층적인 만큼 각 후보들의 이력도 화려했다. 정원식 후보는 국무총리와 민자당 선대위원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조순 후보는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 서울대 총장,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박찬종 후보는 3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그 뒤 대선에 출마한 전적이 있다.

이 대결에선 ‘서울 포청천’ 조순 후보가 득표율 42%로 승리를 거뒀다. 박찬종 후보와 정원식 후보는 각각 33%, 20%를 득표했다. 말 그대로 공룡들의 싸움이었다.

제2회 지방선거, “올드보이도 뚫지 못한 IMF 민심”

image 제2회 지방선거 서울시장후보 포스터.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

“서울을 살려낼 구원투수” 최병렬(한나라당)
“'서울은 고건' 서울전문가 고건” 고건(새정치국민회의)

1998년 6월 4일 치러진 제 2회 서울시장선거는 관선 서울시장을 역임했던 최병렬과 고건 두 후보의 양자대결 구도였다. ‘서울을 살려낼 구원투수’(최병렬)와 ‘서울은 고건’이라는 벽보 속 수사엔 시정 경험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반영 돼 있다.

그러나 여론은 두 후보의 익숙함과 관록에 환호하지 않았다. 새 얼굴인 조순 서울대 교수가 야당후보로 나서서 무소속 박찬종 후보와 치열한 접전을 펼쳤던 1회 선거에 비해 후보들의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로 촉발된 정치 냉소주의도 여론 냉각에 한 몫 했다. 같은 해 5월 20일 실시된 고건 후보와 최병렬 후보의 서울시장 후보 TV토론 시청률은 방송 3사를 모두 합쳐 10.3%에 불과했다.

당시 선거 승패보다는 ‘IMF 체제 편입 책임공방’ 등 금융위기와 직결된 의제가 선거철 화두로 떠올랐다. 여론도 지방선거를 ‘정권 심판’보다는 ‘생활 개선의 기회’로 여겼다. 당시 동아일보가 서울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방선거를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라고 규정한 응답은 66.7%로 이는 ‘김대중 새정권에 대한 평가’(28.3%)라고 평가한 응답의 두 배를 넘어서는 수치다.

접전 끝에 국민회의 고건 후보가 득표율 53.46%로 43.99%를 득표한 한나라당 최병렬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이로써 고건 후보는 역대 서울시장 중 첫 번째로 여당 출신 서울시장이 됐다.

제3회 지방선거, “세대에 따라 선택도 달랐다”

image 제3회 지방선거 서울시장후보 포스터.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

“일 잘하는 경제시장!” 이명박(한나라당)
“앞으로 갑시다, 부패와 특권은 물러서라! 1천만 시민은 앞으로 간다!” 김민석(민주당)

김대중 정부 막바지에 실시된 제 3회 지방선거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민주당 김민석 후보의 박빙의 대결이었다. 경영인 출신의 이명박 후보는 ‘경제시장’ 레토릭을 전면에 내걸었고 38세였던 김민석 후보는 청렴하고 미래지향적인 구호로 표심을 호소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김대중 정부 심판론’을 중심전략으로 삼았지만 선거전은 세대 간 결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2030이 청년 김민석 후보에게 열광한 반면 4050은 경제실전경험이 풍부한 이명박 후보에게 높은 지지율을 보인 것이다. 또한 이명박 후보의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 뉴타운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두 후보의 지지율은 선거 직전까지 박빙이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 이명박 후보가 51.8%를 득표해 김민석 후보(42.6%)를 제치고 서울 시장으로 당선됐다. 한편 3회 지방선거는 한일 월드컵 일정 한가운데 치러진 탓에 역대 최저의 투표율(전국 48.8%, 서울 45.7%)을 기록했다.

제4회 지방선거, “보람이 잡은 산토끼”

image 제4회 지방선거 서울시장선거 포스터.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

“보람이가 행복한 서울! 진실의 힘!” 강금실(열린우리당)
“맑은 서울! 매력있는 서울! 깨끗한 힘” 오세훈(한나라당)

2006년 5월 31일 치러진 4회 서울시장선거는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의 ‘집토끼 복원’과 ‘산토끼 잡기’로 압축 된다. 강 후보는 전통적 지지층인 호남·개혁세력과 오 후보에 집중되고 있는 여성표를 끌어오기 위해 집토끼 잡기에 집중했다. 강 후보의 선거 벽보에도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강 후보는 가상의 어린이 ‘보람이’를 설정해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선거 후반부에는 ‘정치는 짧고, 교육은 길다!’는 플래카드로 교체해 ‘교육시장’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반면 오 후보는 젊은층, 중도세력 등으로 한나라당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주력을 다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운데 대한 반격이었다. ‘보람이’나 ‘교육’처럼 타깃이 확실한 강 후보의 벽보에 비해 오 후보의 벽보 글귀는 다소 추상적이지만 포괄하는 범위가 넓다.

선거결과는 61.05%를 득표한 오세훈 후보의 압승이었다. 강금실 후보의 득표율은 27.31%에 그쳤다. 이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은 25개 서울 구청장 자리를 모두 독차지 했다. 같은 해 4월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방선거를 둘러싼 여론은 '참여정부 심판'(37.5%)보다는 '부패 지방권력 교체'(53%)라는 의견이 우세했는데 투표함을 열어보니 임기 4년차에 접어든 참여정부 심판색이 짙었던 것이다.

‘박근혜 피습사건’도 선거 결과에 한 몫 했다. 당시 서울 신촌 유세 과정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괴한에게 피습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일을 계기로 한나라당은 동정표를 긁어모을 수 있었다.

제5회 지방선거, “반쪽승리, 무상급식이라는 부메랑”

image 제5회 지방선거 서울시장후보 포스터.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

“일 잘하는 젊은 시장. 깨끗한 힘, 미래의 힘 오세훈” (한나라당)
“사람특별시(친환경 무상급식, 무상보육, 일자리 창출)” 한명숙(민주당)
“대한민국을 바꿀 서울시장 노회찬” (진보신당)

2010년 6월 2일 치러진 5회 서울시장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접전이 벌어졌다. 개표 결과는 오 후보 득표율 47.4%, 한명숙 후보 득표율 46.8%로 불과 0.6% 차이다. 이로써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후보는 최초의 민선 연임 서울시장이 됐다.

한편 3.26%를 득표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는 ‘후보 단일화 했더라면 한명숙 후보가 당선 됐을 것’이라는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노 후보는 ‘대한민국을 바꿀 서울시장’이란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처럼 거대 양당 틈바구니에서 다당제로의 이행가능성을 몸소 보여줬다.

오세훈 후보의 선거 벽보는 깨끗함을 강조한 4회 선거 표어와 큰 차이가 없다. 달라진 점은 시정경험을 토대로 추가된 ‘젊고 유능함’이다. 반면 총리 출신 한명숙 후보는 보살핌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람특별시’라는 메인 슬로건 안에 이를 실천할 대표 공약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무상급식 정책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결과는 오세훈 후보의 승리였지만 냉정히 따지면 반쪽짜리 승리였다. 오 후보가 강남 3구 포함 8개 구에서 한명숙 후보를 앞선 데 비해 한 후보는 17개 구에서 오세훈 후보를 앞선 것이다. 개표 후 유권자들 사이에서 ‘강남 책임론’이 거론되기도 했다. 오세훈 후보는 선거에서 이기고도 대표성에 치명타를 입고 만 것이다.

그리고 1년 뒤, 사그라질 줄 모르던 무상급식 논란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자기 자리를 걸고 무상급식 찬반투표를 실시했다가 투표율 미달로 개표가 무산되면서 임기 도중 자진사퇴하고 만다. 같은 해 서울시장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당시 무소속 후보가 선출된다.

제6회 지방선거, “당신 곁에 누가 있습니까?”

image 제6회 지방선거 서울시장후보 포스터.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정보도서관

“일자리와 복지 챙기는 정몽준” 정몽준(새누리당)
“당신 곁에 누가 있습니까?” 박원순(민주당)

2014년 6월 4일 제 6회 지방선거 치러졌다. 새누리당의 정몽준 후보와 재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직을 두고 겨뤘다.

두 사람은 확연히 다른 철학으로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기업가 출신의 정몽준 후보는 저성장 기조를 겨냥해 ‘일자리’와 ‘복지’, ‘안전’을 기치로 민생 보듬기에 나섰다. 박원순 후보는 ‘당신 곁에 누가 있습니까?’ 물으며 본인이 현직 시장임을 강조했다. 또한 ‘원순 씨의 2년 6개월, 시민의 삶이 바뀌고 있습니다!’며 에둘러 치적을 과시했다. 선거 초반에 두 후보의 지지율이 비등비등했다. 2014년 3월 24일 CBS 여론조사에 다르면 정 후보의 지지율은 40.4%로 39%인 박 후보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정몽준 후보의 아들이 쓴 ‘국민 미개글’ 파동으로 두 후보의 지지율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미흡한 대처 때문에 집권여당 심판론이 형성된 가운데 정 후보의 막내아들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두고 ‘국민이 미개하다’고 SNS에 쓴 글이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한편 박원순 후보는 ‘현직 프리미엄’을 발판삼아 꾸준히 지지율을 올릴 수 있었다. 같은 해 5월, 2호선 상왕십리역 열차 충돌사고가 발생했을 때 발 빠른 대처를 보여 시민의 불안을 보듬어 주기도 했다. ‘당신 곁에 누가 있습니까?’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보여준 셈이다.

결국 과반수의 서울시민들이(56.12%) 박원순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정몽준 후보의 득표율은 43.02%로 2위에 그쳤다. 세월호 이후의 국민들은 수사뿐인 안전이 아닌 피부에 와 닿는 안전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로써 박원순 후보는 역대 서울시장 중 최장기 재임 기록을 세웠으며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 3선에 도전한다.

image 제7회 지방선거 서울시장후보자들. 좌측 위부터 박원순 현 시장, 자유한국당 김문수, 바른미래당 안철수, 정의당 김종민, 민중당 김진숙, 녹색당 신지예, 우리미래당 우인철, 친박연대 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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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진은혜 정치발전소 회원
편집=조성은 정치발전소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