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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공정성 해치는 '기울어진 운동장'

유권자와 후보자를 가로막는 '선거법'의 벽

정치발전소 2018년 06월 04일

사단법인 정치발전소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에서 기고해주신 글 입니다_Deepr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최원선씨(39세, 서초제1선거구). 정치적 소수자인 여성이자 청년으로서 정치를 바꿔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도전을 결심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공약은커녕 지역 유권자들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방대하고 복잡한 선거법은 최원선 후보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제동을 걸었다. 두 명의 현역 시의원과 경쟁해야 하는 그는 "인지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역 의원은 사임하기 전까지 예비후보자 신분이 아니다. 현역 의원으로 주민들이 모이는 지역 일정을 다 꿰고 있고 행사장 안에서 주민들에게 인사말도 할 수 있다. 수행원도 둘 수 있다.”

image 최원선 서초제1선거구 서울시의원 후보. 사진=최원선 후보 캠프 제공

현역 의원들은 이미 지역 내 인지도가 쌓여있는 한편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않아도 지역구에 공식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다. 출발부터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공정성을 위해 만든 선거법이 불공정성 심화시킨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기울기를 더한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선거운동 기간은 2주(6.13 지방선거의 경우 5월 31일부터 6월 12일까지)다. 정식 후보등록을 하기 전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부터는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시도지사의 경우 선거일 전 120일, 지역구 시도의회의원이나 자치구시의 지역구의회의원 및 장의 경우 선거일 전 90일, 군의 지역구의회의원 및 장의 경우 선거일 전 60일이 예비후보 등록기간이자 예비후보로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이다.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가 금지된다.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광고는 물론,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이름을 나타내는 광고나 벽보도 안 된다. 하지만 현역 의원이나 지자체장, 시의원, 구의원은 선거일 전 90일까지 의정보고회 등을 통해 정책을 알릴 수 있다. 도전자와 인지도 차이가 이미 벌어진 상태에서 공약 홍보까지 훨씬 앞서는 셈이다.

image 경기도지사선거 벽보 사진=조성은

실제로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단체장들은 예비후보 등록 전 현역 도지사, 시장의 신분으로 새 정책을 발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 4월 11일, 현직 시장의 신분으로 공식 출마 기자회견을 가졌다. 무상급식, 시립대 반값등록금, 채무 8조 감축과 사회복지예산 두 배 증액 등 자신의 시정활동을 소개했다. 이어 9개의 주요 공약 발표가 있었다. 초등 돌봄교실 확대와 청년미래기금 등의 공약은 현재 서울시의 정책 방향과 맥을 같이 한다.

한편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는 임기 말 광역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기로 발표했다. 버스 준공영제는 버스 운송에 드는 비용인 표준운송원가를 산정해 원가보다 부족한 수입금을 각 시군이 버스회사에 지원하는 제도다. 경기도는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교통 대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지만 임기 말 경기도의회와도 충분한 소통이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해 ‘지방선거를 겨냥한 졸속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image 김용석 서초구청장 후보. 사진=김용석 후보 페이스북

2010년 서울시의원에 처음 당선돼 2014년 재선 경험이 있는 김용석 서초구청장 후보는 “선거운동과 현직 단체장의 통상적인 정치행위, 의정행위에 대해 칼로 썬 듯이 딱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며 “이를 좁게 보면 단체장이나 의원의 의정활동을 제한할 수 있고 넓게 보면 현역에 대한 지나친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좁게 보는 경우 90일 전인 3월 14일부터는 단체장이 주민들을 만날 수가 없다. 하지만 드물게 단체장 중에는 선거에 안 나갈 사람도 있지 않겠나. 혹은 선거에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정을 챙길 수도 있다. 그럼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제한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박원순 시장의 경우 마지막까지 서울시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민주당 경선에서 이기고도 서울시장직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관점에 따라 좋게 볼 수도 있고 안 좋게 볼 수도 있지 않겠나”

실제로 선거 전 90일의 기간 동안은 아주 특별한 안건이 아닌 이상 의회가 처리할 수가 없다. 의회가 마비되는 것이다. 그는 또 “반대로 넓게 보는 경우에는 의원보다는 단체장들이 유리하다. 예를 들어 ‘통장 교육’이라는 목적으로 지역 내 통장들을 소집해 연설을 할 수도 있다. 단체장 권한 내에 있는 일이니 이건 단체장의 현역 프리미엄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선거는 전체적으로 현역이 유리하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 모두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 현역과 도전자는 인지도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나아가 현역이 유리하다고 해서 의정활동에 제한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전자 입장의 다른 광역의원 후보자는 이에 대해 ‘공정성의 문제’라 말하면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예를들어, 법적으로는 선거운동 기간이 아니면 현수막을 걸 수 없다. 하지만 현직자들은 선거운동 기간 이전에도 ‘OOO의원 지역사무소’라는 이름으로 자기 공약이나 정책을 홍보할 수도 있다. 정치 신인일수록 지역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공약을 설명할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제한되는 것이 불공정한 것이다.”

돈줄 잡으려다 발목 잡는 선거법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 제58조부터 제118조까지 규정돼있다. 이 조항들은 선거운동의 정의부터 운동기간은 물론 선거운동 방식까지 상세하게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할 수 있는' 선거운동 방법은 명함돌리기와 벽보, 공보, 현수막, 어깨띠, 신문/방송/인터넷 광고 등이다. 금지되는 것은 훨씬 많다. 공직선거법은 제87조부터 제109조까지 '금지사항'을 규정했다.

image 최진학 군포시장 후보 선거 운동원들. 사진=조성은

image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사진=김한솔 바른미래당 서울시의원 후보 캠프 제공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4월 발간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정치관계법 사례예시집'을 보면 '할 수 있는 행위'와 '할 수 없는 행위'가 사례별로 제시돼있다.

  • 후보자의 이력이 담긴 명함을 배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후보자 초청, 대담 내용을 게재한 인쇄물을 일반 선거구민에게 배부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 또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이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때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거나 선전하는 내용의 영상물을 상영해서도 안된다.
  • 후보자를 홍보하는 기사가 실린 유료 잡지를 지역 행사에서 기념품으로 배부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 현역의원의 의정보고에도 제한이 있다.
  • 불특정 다수가 왕래하는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의정보고는 금지된다.

공직선거법이 이토록 세밀한 것은 불필요한 과열 경쟁으로 선거 비용이 상승하는 ‘돈 선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공정한 선거를 만들기 위한 조항이 정치 신인과 현역간의 불공정성을 심화시켜 정치 신인의 발목을 잡는다. 지역 내에 인지도를 쌓은 현역과는 달리 이름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도전자에게 이렇게 규정된 선거법은 제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image 김한솔 서울시의원 후보(서초제4선거구)와 캠프관계자들. 사진=조성은

예비후보 등록 후 선거운동을 시작하려 해도 선거법은 이래저래 발목을 잡는다. 대표적인 것이 판넬이다. 예비후보 기간엔 홍보용 판넬을 후보자 본인만 몸에 부착한 형태로 지닐 수 있다. 끈을 이용해 몸에 걸어놓는 것은 되지만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안 된다.

서초제4선거구 서울시의원 후보로 나선 김한솔씨(30)는 “끈을 이용해 손목에 묶고 판넬을 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냥 들고 있는 것은 불가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한솔 후보는 또 전동 킥보드를 사용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전동 킥보드를 타고 그냥 이동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유세를 하려면 선거 차량으로 등록해야 하는데 전동 킥보드에 대한 세부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거 운동원들이 선거운동 옷을 입고 그냥 이동하는 것이 이동인지 유세인지 구별이 모호했다.

김한솔 후보는 “해도 된다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선거운동을 하려고 하면 ‘숨 쉬는 것 빼고’ 일일이 선거법을 확인하고 선관위에 문의하다 보니 속도도 더딜 수밖에 없다.

“주민들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지’만 신경쓰게 되는 것 같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할까?

미국은 자유주의적 전통에 따라 선거운동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는 편이다. 선거기간에 대해서도 따로 규정이 없다. 독일 역시 기본법상 표현의 자유에 충실해 선거운동에 대한 규정은 두지 않고 있다. 특히 독일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어 후보자 개인의 선거운동보다 정당 지지율이 중요하다. 정당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선거운동이라 할 수 있다. 후보자 개인의 부담이 적고 상대적으로 정치 신인이 등장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국은 선거운동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한편 선거비용에 대해서는 규제를 두고 있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선거운동에 엄격한 규제가 존재한다. 선거운동 기간이 20일로 정해져 있다. 그 이전에도 집회를 개최하거나 인쇄물을 배부하는 것이 가능하다. 선거운동 비용에도 상한선이 있다. 프랑스 하원의원 선거의 경우 기본 38000유로에 주민 1인당 0.15유로씩 증액돼 평균 제한액은 54000 유로 정도다. 선거운동 기간부터 방식, 선거 자금에 광범위하고 세세한 규정을 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다.

정치의 문턱을 높이는 불공정한 게임의 룰

2016년 8월 2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 정치신인의 사전선거운동을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이로써 도전자는 선거운동 기간 이전 자신의 공약을 설명하는 정책설명회를 가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법원의 해석이 넓어진 것일 뿐 공직선거법은 여전히 선거일 180일 이전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일체 금지하고 있다. 포괄적인 규정이다. 기준이 명확해지려면 관련 판례가 더 쌓여야 한다.

우리 정치의 문턱은 높다. 2014년 지방선거의 경우 시도지사 17명 중 11명이 ‘뉴 페이스’이긴 했지만 그 중 9명은 현직 국회의원 출신이었다. ‘정치 신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의원 100명 중 40명이 초선의원이었다. 그중 17명은 구의원 출신이었다. 이미 지역 내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지방선거에만 한하지 않는다. 정치의 문턱은 중앙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20대 국회의 경우 초선의원의 비율은 44%에 불과하다. 16대 국회 이후 최저 수치다. 정치의 문턱이 높아지는 것은 정치적 소수자들의 민의 반영이 어려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20대 국회는 사회의 다양성을 충분히 대표하지 못했다. 당선자의 평균 연령은 55.5세였다. 인구 전체의 중위연령이 40세인 것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높다. 또 당선자의 83%는 남성이었다. 뿐만 아니라 직업, 출신 학교, 출신 지역 등에서도 ‘쏠림 현상’이 있었다. 민의를 반영해야 하는 국회가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물론 선거법만의 문제는 아니다. 바꿔야 할 것은 많다. 또 초선 의원 비율이 높아진다고 해서 정치가 잘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정책이나 의견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투표하는 것은 분명 정치의 공정성을 훼손한다.

지난 3월 22일, 청와대는 3차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헌안에는 '선거운동의 자유 확대' 조항이 새롭게 삽입됐다. 조국 민정수석은 3차 개헌 발표문을 통해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다만 후보자간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도록 선거운동에 관한 규정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현행 헌법이 선거운동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면 개헌안은 ‘예외적으로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개헌은 무산됐다. 유권자들에게 정보 제공을 제한하는 선거법은 당분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치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정치의 문을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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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조성은 정치발전소 기획위원, 이은주 정치발전소 회원
편집=정인선 Deepr 기자, 황종섭 정치발전소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