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조권이 '나'로 존재하는 방법

우리에겐 조권의 태도가 필요하다

하민지 2017년 03월 09일

Mnet '골든탬버린' 마지막 화. 조권이 노래할 차례. 무대 정중앙에 관 같은 게 하나 섰다. 비닐로 덮여진 관이었다. 전주가 시작되자 조권은 비닐을 찢고 관에서 나왔다. 금발 가발에 진한 화장, 높은 하이힐. 어김없이 또 여장이었다. 누리꾼에게 조권의 여장은 늘 논쟁거리였다. "거북하다"는 이들과 "뭐 어떠냐"는 이들은 조권의 존재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조권은 자신의 SNS에 입장을 밝혔다. "아무도 나를 단정 지을 순 없어요. 그게 저인 걸요"라고. 숱한 논란에도 '이게 나'라고 이야기하는 조권. 무엇이 그를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걸까.

남성의 '여장'은 놀림거리일까

논란의 여장은 4년 전부터 시작됐다. 2013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지크수)'에서 '헤롯왕' 역할을 맡은 것. 성경에서 헤롯은 남성이지만 지크수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영국 웨스트 엔드에서 헤롯은 주로 풍만한 체격의 여배우가 맡는다. 이 역할을 조권이 소화했다. 특이한 것은, 여성의 풍만한 체격을 표현하기 위해 가슴이나 엉덩이를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그 모습, 마르고 흰 피부의 조권 그대로가 헤롯의 요염한 연기를 소화했다. 헤롯이 남성과 여성을 넘나들기 때문이었는지, 이때까지만 해도 논란이 크지는 않았다.

image 지크수에서 헤롯을 연기 중인 조권. 사진=제로스

다음 뮤지컬인 2014년 '프리실라'에서 여장 논란은 극대화 됐다. 조권은 이 작품에서 게이인 '아담'역을 맡았다. 아담은 나이트클럽에서 여장을 하고 춤을 추는 쇼걸이다. 조권의 노출은 전보다 과감해졌지만 여전히 있는 모습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 일부 누리꾼은 불쾌함을 쏟아냈다. 논란이 일자, 조권은 SNS에 "그냥 '너'라서 소중한 거야"라고 썼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냥'이라는 부사의 함의는 크다. 아무 조건 없이,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를 소중하다고 본 것이다. '나'가 아니라 '너'라고 쓴 것에도 의미가 있다. 조권은 누리꾼을 '너'라고 호명한 것으로 보인다. 비난에 대한 입장을 밝혀도 될텐데, 모두의 존재를 먼저 긍정한 것이다.

image 프리실라 포스터. 사진=서울컴퍼니 페이스북

지크수부터 골든탬버린까지, 조권은 "왜 여장을 하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 왔다. 왜냐하면 그동안 남성의 여장은 웃음거리로 소비돼 왔기 때문이다. tvN 'SNL'의 권혁수는 웃긴 여장으로 인기를 얻은 대표 연예인이다. 또 골든탬버린 1화에서 god는 여장을 하고 아이오아이의 무대를 따라했는데, 자막에는 '충격, 주먹을 부르는 비주얼'과 같이 god를 비웃는 문구가 쓰였다. 이외에도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성에게 벌칙으로 여장을 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남성이 여장을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이런 현상은 우리 생활과도 멀지 않다. 대학교 신입생 OT 중 '미스 ㅇㅇ(과 이름)' 시간에 신입생 남학우를 여장시켜 모두의 웃음거리로 삼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누리꾼 입장에선 의아한 것이다. 조권이 상대방을 웃기려는 의도 없이 진지하게 여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니 '왜 저러나' 싶은 것이다.

조권은 "그게 저인 걸요"라고 답한다. 실제로 조권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 울퉁불퉁한 팔 근육과 종아리 근육을 숨기지 않았다. 가슴과 엉덩이를 부풀리지 않았다. 노래를 하며 목소리를 일부러 가늘게 내지도 않았다. 원래 갖고 있던 풍부한 성량 그대로 노래했다. 흔히들 상상하는 '진정한' 여성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단지 가발을 쓰고, 화장을 하고, 높은 구두를 신었다. 골든탬버린 마지막 무대에선 가발을 벗어 던져버리기도 했다. 어쩌면 조권은 여성처럼 되고자 한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냥 조권'이 보여줄 수 있는 많은 모습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 의지로 존재하는 '나'

조권을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조권 자신이다. 그는 '골든탬버린' 마지막 무대에서 관의 비닐을 찢고 나왔다. 타인이 강요하는 모습을 뚫고 나오듯이 관에서 뛰어 나와 신 나게 무대를 뛰어 다녔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밀고 나간다. 가요 프로그램에선 발라더이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선 '깝권(깝죽거리는 조권)'으로 끼를 발산한다. "남자가 왜 그래"라는 시선 속에서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이게 그의 삶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조권의 존재를 맘대로 규정하며 조권이 조권으로 존재하지 못 하게 한다.

image 골든탬버린 마지막 무대 분장 모습. 사진=조권 인스타그램

수많은 이가 조권처럼 자신의 존재를 규정당하며 살고 있다. 화장하고 싶지 않은 여성과 화장하고 싶은 남성, 집안일 하는 어머니와 돈 버는 기계인 아버지, 커피만 타는 인턴사원과 구직이 삶의 목표가 돼버린 취준생 등 내가 '나'로 살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사회는 우리에게 특정 역할을 끊임없이 부여한다. 이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게 사회인으로서의 미덕이자 생존법이다. 그사이, 우리의 존재는 조금씩 지워진다. 그러니까, "조권의 여장은 거북해"라는 말은 "엄마가 밥 안 하면 거북해", "아빠가 돈 안 벌면 거북해", "인턴사원이 커피 안 타면 거북해"와 같은 뜻이다. 어떤 목적을 수행할 용도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조권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이래야지"라는 말을 따르려 사는 게 아니다.

이제, 우리에겐 조권의 태도가 필요하다. 조권이 타인의 존재를 먼저 긍정했듯이 우리도 그래야 한다. 상대의 역할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거대한 편견의 구조는 조금씩 깨질 수 있다. 그때, 나 자신도 타인의 편견으로부터 해방돼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다. 온전히 내 의지에 의해서 말이다. 조권이 비닐을 찢고 나오며 부른 노래는 Lady Gaga의 'Born This Way'다. 그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전한다. "I'm beautiful in my way(난 내 모습 그대로 아름다워) 'Cause god makes no mistakes(신은 실수를 하지 않으니까) I'm on the right track baby(난 옳은 길을 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