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호소하는 경비원들

갑질보다 무서운 친절

윤지원 2017년 03월 10일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계단을 두 개씩 뛰어 내려가니 경비원 아저씨가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안녕하세요" 급하게 외치고 뛰어나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저씨 어깨에 걸려 있던 흰 띠가 경비실 문에 걸려 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다. 멈칫,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지만 일단 급한 나는 그대로 지나친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아파트는 지난 2월 21일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통합경비시스템(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기로 의결했다. 총 31명의 입주자 대표 중 22명이 참석한 가운데 투표한 내용이다. 이에 현행 유인경비시스템을 폐지함에 따라 경비원 전원이 일제히 해고 위기에 놓였다. 최종 계약 해지는 6월이다. 3개월도 못 되는 기한이 남은 셈이다.

image 경비실 창문에 붙어 있는 종이

언론의 조명도 받았고, SNS 상에서 적지 않은 반대의 움직임도 일어났지만 단지 안에서는 그런 움직임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화의 장이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처음 공고가 나붙었을 때만 잠시 수군거렸을 뿐,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는 곧 구석에 놓여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화분처럼 익숙해졌다. 하지만 형 집행일을 받아 놓은 사형수처럼 하루하루 지날수록 불안해하던 경비원들은 급기야 이런 호소문까지 내놓기에 이르렀다.

"우리 올림픽 선수·기자촌아파트 경비원들은 스스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표면적 '관리비 절감'과 내면적 '입주민님의 편익'을 동시에 충족하려는 자구책을 아래와 같이 마련"… 이것은 노동자가 직접 자신의 팔다리를 잘라내면서까지 사용자의 만족을 추구하겠다는 얘기다. "현재 283명의 근무인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재편성하여 150명의 근무인원의 관리비를 절감"… 자체 구조조정이다. 일부가 잘려도 좋으니 우리 모두를 자르지 말라는 거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인상되어도 일체의 임금인상 없이 급여를 동결하겠습니다"… 덜 받아도 좋으니 해고만은 막아달라는 거다.

image 호소문 1, 호소문 2. 약 일주일 간격을 두고 새로 붙여진 두번째 호소문에는 고용의 사지까지 몰려난 이들의 처절함이 느껴진다..

말투는 평이하지만, 내용은 결국 제발 저희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사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 한 번 우리가 없는 불편함을 감수해 봐라'고 파업을 해 볼 법도 한데, 경비원들에게는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머릿속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굴종적인 태도는 이들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불쌍하다는 눈길이 좋을 리 없죠. 주민분들께 호소한다는 게 마치 구걸하는 기분도 들고…" 주차된 차를 밀고 있던 경비원 A씨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게 말을 할 수 없어요. 5년 넘게 근무한 경비원도 주민 기분에 따라 잘리는 판에, 할 수 있는 건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밖에 없지요." 그는 자꾸만 말 끝을 흐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물어보니 대답은 해 주지만, 자신의 답변이 어디에 어떻게 이용돼서 주민의 기분을 '거스르게 할 지' 걱정이 많은 표정이었다.

A씨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경비원의 생사 여탈권은 거의 전적으로 주민에게 달려있다. 경비원들은 용역업체에 속해 있고 용역업체는 아파트, 즉 주민과 계약했다. 경비원의 노동권을 직접적으로 책임지는 주체가 없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도 아파트 측에서는 용역업체에 문의하라 하고, 업체는 그러게 왜 주민의 항의가 들어오게 했느냐는 식이다. 만약 주민과 마찰이 생겨 그 사람에게 소위 '찍히면', 경비원은 최소 근무위치 변경·최대 해고에 처한다. 다른 동으로 가게 되는 경우는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이다. 아직 젊어서 노동력이 있다고 판단된 경우다. 일반적인 정년(65세)에 가까운 사람은 말 그대로 잘린다. 해고에 보호 장치가 전무한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는 사태가 가능했다. 그러니 주민의 감정에, 선의에 호소하는 것 말고는 마땅한 방법조차 없었던 것이다.

image 경비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어깨 띠. 아예 경비실 문에 붙였다.

일이 발생한 올림픽 아파트는 소위 '부자 동네'에 위치해 있다. 선거 때마다 빨간색을 놓치지 않는 강남 3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주민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고위층으로 인식되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적어도 주민과 경비원 간 가시적인 마찰로 인해 크게 난리 난 적은 없었다. 경비원을 아파트 주민이 폭행했네,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명절 선물이라고 줬네, 하는 등의 저열한 갈등도 일어난 적도 없었다.

'경비와 주민 편의 제공'의 업무를 마치 주인을 섬기는 머슴인 것 마냥 착각하고 "갑질"을 하는 사건이 뉴스에 비칠 때면 우리 모두 욕한다. 그러나 아파트 경비원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무례한 행동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배척과 차별이 더 힘들게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입주자가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자각하지도 못하는 경우, 경비원들은 내놓고 항의하기도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상냥하게 대하는 것, 먼저 건네'주는' 인사, 명절 선물 등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접 외의 친절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친절은 그들의 처지를 바꿔줄 수 없다. 고용이 타인의 선의에 달려 있는 사람들의 과잉 서비스를 은근히 누리면서, 친절만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것은 착각이다. 경비원들은 사용자와 계약으로 얽힌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기본급도 받고 있지 못한 노동 구조 하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