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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수라>의 차가운 정의

세상에 없는 도시, '안남시' 시민이 등장한 이유

하민지 2017년 03월 10일

이 글에는 <아수라>, <신세계>, <더 킹>, <베테랑>, <범죄와의 전쟁>, <내부자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아수라>는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는 영화다. 일단 선한 인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나쁜 놈'들끼리 싸우다 다 죽는다. 한국 영화의 '아저씨 서사'에서 종종 그려지는 마초들끼리의 의리도 없다. 한도경(정우성 분)과 문선모(주지훈 분)는 동지 관계였는데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 내내 말 그대로 아수라(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덟 신 중 하나.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아수라도(阿修羅道)에 머문다.)처럼 펼쳐지는 과잉된 폭력은 피로감까지 안겨준다.

일반적인 선악 구도와 한국 느와르의 '멋진 나쁜 놈'에 익숙한 관객에게 <아수라>는 불친절한 영화다. 평단의 반응도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결국 흥행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 하고 실패했다. 그런데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진 후 마니아층이 생겨났다. 이들은 자신들을 '안남(영화 속 가상도시) 시민', '아수리언' 등으로 부르며 컬트 현상을 만들어 냈다. 뒤늦게 사람들이 <아수라>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싸늘하다, 차가운 정의가 날아와 꽂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수라>에 구현된 '차가운 정의' 때문이다. <아수라>에서는 한국 느와르의 새로운 문법이 만들어졌다. 애매하게 선한 인물이 어설프게 정의구현하지 않고 나쁜 인물들끼리 서로 위악을 부리다 자멸하는 것이다. 기존의 한국 느와르는 선하다고 설정된 인물, 즉 관객과 감정선을 공유하는 인물이 대체로 애매하게 선했다. <신세계>에서 "드루 와(들어 와)"라는 명대사를 남긴 정청(황정민 분)은 이자성(이정재 분)에 대한 의리를 지켰지만 권력 유지를 위해 살인을 일삼았다. <더 킹>의 박태수(조인성 분)는 검찰 비리를 폭로하지만 선한 동기가 아니라 정치적 보복으로 한 일이었다. 이처럼 한국 느와르의 정의는 늘 어설프다. 정의를 구현할 자격이 없는 캐릭터에게 정의를 맡긴다. <아수라>는 이런 가식적이고 착한 척하는 정의를 모두 집어던졌다. 그저 악한 인물들끼리 파멸을 자초하게 했다.

image 영화 <아수라> 스틸컷. ⓒ (주)사나이픽처스, CJ 엔터테인먼트

그래서 극장을 나서는 뒷맛이 영 찝찝했던 관객이 많았을 것이다. <베테랑>처럼 정의가 시원하게 이긴 것도 아니고, <범죄와의 전쟁>처럼 악한 인물이 다시 돌아오는 반전이 있지도 않았고, <내부자들>처럼 극적인 역전이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수라>는 그냥 다 죽었다. 그런데 조금 달리 보면 이 결말은 되레 깔끔하다. 불공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고 늘 폭력을 일삼은 형사, 시장, 검사들이 서로의 총칼에 즉결 처분당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즉결 처분을 한 이가 악한 인물 당사자들이란 것이다. <아수라>는 이 현상을 진단하고 심판할 단 한 명의 영웅도 불러내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들 손으로 파국을 맞게 했다. ‘피아를 모르는 눈 먼 화살(김훈, <현의 노래>의 한 구절)’이 오가듯, 총칼은 네 편과 내 편을 구분하지 않고 오직 나만 살기 위해 사용된다. 그리고 아무도 살아남지 못 한다. 영웅이 있었다면 으레 권선징악 클리셰가 등장했을 것이다. 그럼 영웅이 뭘 잘못했는지 정도는 일러주기라도 했을텐데, <아수라>의 악한 인물들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살려고 발버둥치다 모두 죽었다. 참으로 차가운 정의다. 못된 권력자들의 가련한 생의 의지 때문에 마지막 장례식장씬은 여느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그렇기에 이 결말은 판타지스럽기도 하다. 나쁜 권력자들이 죗값을 제대로 치르는 세상은 우리 현실에 없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2년에 발간한 <법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연구>에 따르면,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법을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질문에 조사 대상자의 79.2%가 동의했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권력자가 <아수라>처럼 전부 죽는 것으로 죗값을 치러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죄의 내용이 소상히 밝혀지고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며, 그 후에는 참회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상식적인 권선징악은 아주 먼 옛날 <콩쥐 팥쥐>가 구전되던 시절부터 있어 왔다. 이 당연한 윤리가 실현되지 않으니 <아수라> 같이 비현실적인 영화가 나온다.

안남시로 현실 도피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원한다

image 안남시민연대의 촛불집회 참가 사진. 출처 트위터 @minister_yj

현실에는 없는 <아수라>의 결말 때문에 안남시민과 아수리언이 생겨난 건 아닐까. 안남시는 정의가 살아있는 도시다. 비록 다 죽는 차가운 정의라 할지라도, 죄 지은 자들이 정당하게 죗값을 치르는 곳이다. 실제로 아수리언들은 ‘안남시민연대’를 조직해 박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트위터 ‘안남 시민일보’는 탄핵을 기뻐하는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 ‘안남시 디자인 공무원’은 탄핵 기념으로 자체 제작한 컵과 형광펜 추첨 이벤트도 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을 안남 시민으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은 정의가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image 탄핵 선고 당시 헌법재판소 앞. 사진제공 이종건

대한민국을 <아수라>로 만든 주역들이 법의 심판대 위에 올랐다. 국정농단 혐의가 불거진 지 만 5개월 만에 현직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됐다. 헌정 사상 최초다. 그사이, 박영수 특검팀은 70일 간 수사를 벌였다. ‘왕실장’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이재용 삼선전자 부회장까지 줄줄이 구속기소됐다. ‘자연인 박근혜’도 형사소추의 대상이 됐다.

우리는 이들에게 차가운 정의가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죄 지은 대로 벌 받기를 원한다. <아수라>의 인물들과는 달리, 자신의 잘못을 알고 인정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더 이상 안남시로 현실 도피하지 않아도 되는 대한민국을 원한다. <아수라>처럼 끔찍한 파국 없이도, 나쁜 권력자들이 제대로 처벌 받는 나라에서 살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