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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를 보는 두 가지 시선

영화 <귀향>과 <눈길>이 피해를 다루는 방식

하민지 2017년 03월 13일

이 글에는 영화 <귀향>과 <눈길>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년 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극영화 두 편이 개봉됐다. <귀향>과 <눈길>이다. 작년 2월에 개봉된 <귀향>은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지는 영화인데, 제작환경이 열악했고 제작비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움을 느낀 사람들은 <귀향>의 크라우드 펀딩에 큰 관심을 보였다. 곧 11억 여원이 모였고 어렵게 개봉에 성공했다. 개봉 후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나라한 성폭행 묘사 장면 때문이다. 지난 삼일절에 개봉된 <눈길>도 개봉 전 입소문이 있었다. KBS 1TV에서 드라마로 먼저 방영됐던 것. 그때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 호평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같은 아픔을 다뤘지만 평가가 엇갈리는 두 영화. 이유가 무엇일까.

피해 여성을 보는 두 가지 시선

한국 영화는 실제 피해를 다룰 때 피해 사실을 자세히 묘사하고 피해자를 최대한 불쌍하게 그리곤 한다. 피해자의 두려운 눈빛, 비명 소리, 눈물과 가해자의 섬뜩한 눈빛, 적나라한 가해 장면, 과다 출혈된 피가 화면에 흘러넘쳐야만 관객이 공감할 거라고 여긴다. 큰 착각이다. 극영화에서 작가의 상상력을 지나치게 동원해 피해 현장을 생생하게 그리는 순간, 피해 고발과 정상화는 사라지고 자극적 장면만 남는다. 특히나 성폭행을 다룬 영화일 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하다. 지금 당장 구글에서 ‘한공주 엑기스’, ‘도가니 엑기스’, ‘귀향 엑기스’를 검색해 보라. 모두 실제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성폭행 장면만 짜깁기 돼 AV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귀향>은 이 실수를 반복한다. 영화는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피해를 증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회자가 묻는다. “털어 놓고 나시니까 주변 반응이 어떠십니까?” 할머니가 대답한다. “별 반응 없습니다.” 다시 사회자가 묻는다. “일본군의 만행에 얼마나 시달렸습니까?” 할머니는 울면서 그간 당한 일을 소상히 털어 놓는다.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그동안 다들 별 관심 없으셨죠? 이제 이 분들이 얼마나 불쌍한 분들인지 알려 주겠습니다”를 선언하고 시작한 것이다.

image 일본군에 끌려 가는 정민.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주)와우픽쳐스

영화가 피해자의 ‘불쌍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순수한 처녀의 순결이 더럽혀졌다’에 맞춰져 있다. 주인공 정민(강하나 분)의 어머니(오지혜 분)는 자는 정민을 쓰다듬으며 이야기 한다. “니는 그저 곱게 커서 좋은 남자 만나가 시집만 잘 가그래이.” 정민은 어머니의 바람과 다르게 위안부로 끌려 간다. 끌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처녀 검사’를 받는 것이다. 정민의 방에 들어온 일본군은 “열네 살의 처녀라고?”라며 음흉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성폭행 장면이 묘사된다. 영화 전반에 걸쳐, 피해자의 가장 큰 상처는 ‘좋은 남자 만나 시집 가야 하는데 순결을 잃은 것’이다.

바로 여기서 영화의 자극적 장면만 남게 된다. 여성의 존재 가치를 성관계의 유무로만 결정 짓는 것이다. 그 당시 일본군이 피해자를 그렇게 대했다 한들, 영화도 그래야 할까. 위안부 할머니의 소녀 시절 ‘순결’을 강조한 시각에는 ‘위안부 할머니는 순결하지 않다’라는 인식이 이미 깔려 있다. ‘환향년’이라는 단어가 왜 생겨났는가. 피해 사실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여성을 성적인 존재로만 봤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영화는 반대의 시각에서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순결함을 강조하기 위해 성폭행 장면을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의 편견을 재생산해낸 것이다. 엔딩씬에서 씻김굿으로 귀향하게 된 정민을 햐얀 나비로 은유한 것을 봐도, 피해자를 ‘성관계 경험이 없는 순수한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에 가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mage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된 종분. ⓒKBS, (주)엣나인필름, CGV 아트하우스

<눈길>에서 피해를 묘사하는 방식은 다르다. 강간 장면은 한 컷도 없다. 피해 사실을 그리는 것보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트라우마’를 강조한다. 주인공 종분(김영옥 분)은 백발 노인이 돼서까지 악몽을 꾼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는 일본군이 철문을 여는 소리가 꿈에서 계속 들리는 것이다. 도주하다 총을 맞고 사망한 종분의 친구 영애(김새론 분)는 종분의 옆에서 어린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채 영혼으로 존재한다. 영애는 종분에게 “난 이 소리가 정말 끔찍해”라고 말하며 몸서리를 친다. <눈길>에서 중요하게 다룬 것은 현재다. 과거의 피해를 재현해 다시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게 아니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피해 정상화가 되지 않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에 집중했다.

피해자를 묘사하는 방식도 다르다. <귀향>이 피해자를 마냥 불쌍한 존재로 그렸다면 <눈길>은 ‘살아서 투쟁하는 존재’로 그렸다. 종분의 화장대 앞에는 액자가 하나 놓여 있다. 액자 안에는 수요집회 때 찍힌 자신의 사진이 담겨 있다. <귀향>이 과잉된 폭력을 펼쳐 놓으며 공감을 강요했다면 <눈길>은 피해 당사자의 주체성을 드러낸다. 불쌍함을 호소하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사과와 보상을 주장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그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한일합의를 떠올리게 한다.

남성성의 폭력과 자매애

<눈길>이 ‘현재’에 집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장면들이 또 있다. 과거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한 남성성의 폭력이 오늘까지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종분의 옆집에는 여고생 은수(조향기 분)가 산다. 은수는 혼자 산다. 월세와 전기요금 등이 밀리자 집주인은 은수에게 나가라고 독촉한다. 돈이 급해진 은수는 유흥주점에 취직한다. 남자 직원들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왔는데, 보호자가 없어 옆집 할머니 종분에게 연락을 한다.

유흥주점의 남자 직원들은 은수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 “이런 애들이 다 똑같지 뭐. 몸 팔고 사기 치고.” 이 대사는 일본군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했던 시선과 정확히 일치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가 당한 일이 모습만 다를 뿐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 관객에게 할머니가 겪은 일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눈 뜨고 보기 힘든 폭력과 영화가 관객보다 먼저 우는 감정의 과잉 없이도, 충분히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image 종분과 은수. ⓒKBS, (주)엣나인필름, CGV 아트하우스

종분은 은수를 거둔다. 자신의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한 것이다. 은수는 종분과 지내며 안정을 찾는다. 때로는 은수가 종분을 위로하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는 남성성의 폭력 앞에서 서로를 구원하는 자매애를 그려낸 것이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 문제를 현재로 소환할 때, 이 문제를 왜 현재에 해결해야 하는지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관객은 현재에 산다. 현재에 사는 이들에게 그 과거 문제가 오늘날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이 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자매애를 그린 <눈길>은 탁월했다. 그러나 <귀향>은 피해를 묘사하는데 치중하며, 과거 문제를 박물관에 유물처럼 전시해 현재로 가져오지 못 했다.

피해를 고발하기 위해서는

2015년에 개봉된 <사울의 아들>이라는 영화가 있다. 아유슈비츠에서 시체 처리반으로 일하던 사울이 시체 더미에서 아들의 주검을 발견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답답하다. 일단 앵글 안에 인물의 뒷모습이 꽉 차있다. 그리고 잔혹한 장면은 이 뒷모습 앞에서 희미하게 처리된다. 초점이 인물의 뒷모습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뭐 하나 제대로 보이는 게 없는데, 참혹하다. 보여 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느끼려 애써야 한다. 애쓰는 와중에 피해를 체험한다. 영화가 실제 피해를 착취하지 않고도 피해를 고발할 수 있다는 좋은 사례다.

image 아들의 주검을 보는 사울. ⓒ(주)비트윈 에프앤아이, (주)엠씨엠씨, 그린나래미디어(주)

그래서 <귀향>이 아쉽다. 선한 의도로 만든 영화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귀향>의 배우들이 연기하며 심리 치료를 병행했어야 했다는 증언은 이 영화의 폭력성을 실감케 한다. 피해를 상세히 보여줘야만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객의 상상력은 그렇게 빈곤하지 않다. 오히려 관객의 상상력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영화 안에 빨려 들어가 피해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피해가 온전히 고발된다. 이를 위해서는 피해를 착취해 그대로 전시하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