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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는 왜 보라색 넥타이만 맬까

청년층이 손학규를 보는 시선

하민지 2017년 03월 14일

image 강진 토담집 주변에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제일 오른쪽이 손학규. 출처 '말괄량이의 블로그' ariari10.blog.me

"만덕산이 이제 내려가라고 하네요."

작년 10월 20일 오전, 운동화에 트레이닝복 차림이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강진 토담집을 나섰다. 주민들의 배웅에 "감사했다"는 인사를 남기고 서울로 떠났다. 같은 날 오후 네 시, 손 전 대표는 검은색 양복에 보라색 넥타이를 착용하고 국회 정론관에 등장했다. 정계 복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위해서다. 그로부터 세 달 뒤인 올해 1월 22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정계 복귀부터 대선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지금까지, 그는 줄곧 보라색 계열의 넥타이만 매고 있다. 25년의 화려한 정치 경력 중 대통령만 못 해 본 손 전 대표. 그가 늘 착용하는 보라색 넥타이에 대권을 향한 야심만만이 엿보인다. 그러나 청년층이 손 전 대표를 보는 시선은 다소 싸늘하다.

스캔들 없는 경력왕 vs 욕심만 많은 파괴왕

일단 손학규라는 인물에 대해 살펴보자. 그에 대한 공통된 평가는 ‘경력왕’이다. 네 번의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를 두루 거쳤다. 그에게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입법부와 행정부, 지방자치까지 넘나드는 경력에 큰 신뢰를 보내고 있다. 스캔들이 없다는 것도 그의 큰 강점이다. 성희롱이나 음주운전 등 정치인들이 주로 치는 사고를 한 번도 친 적이 없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정치 슬로건 때문에 그를 따뜻한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그를 지지하는 사람은 보통 교수, 기자 등 엘리트 계층이다.

image 국민의당 경기도당 10만 전사 출정식. 출처 '손학규 페이스북'

그런데 젊은 세대가 손 전 대표를 보는 시선은 조금 다르다. 일단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알더라도 이미지가 크게 좋지는 않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을 타깃으로 하는 정치 미디어 ‘쥐픽쳐스’에서는 그를 ‘인간 메트로놈’이라고 소개했다. 큰 일만 하려고 하면 타이밍이 잘 안 맞는다는 것이다. ‘쥐픽쳐스’ 게시물의 댓글에는 “이 분 최소 파괴왕”, “만덕산이 다시 오란다던데…”, “그만 둬! 넌 뭘 해도 안 돼!” 등의 댓글이 달려 있다.

이렇게 ‘파괴왕’ 이미지가 각인돼 있는데 또 대선 출마를 한다고 하니 젊은층에겐 ‘욕심만 많은 사람’으로만 여겨진다. 서울에 사는 공은진(30) 씨는 손 전 대표를 “시류를 못 읽는데 대통령만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평가했고, 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있는 백시우(21) 씨는 "매번 실패해서 별 관심이 안 가는 사람"이라고 봤다.

자꾸 어긋나는 타이밍, 과연 징크스 탓일까

전영심이 2008년에 발표한 논문 ‘보라색의 상징성 연구’에 따르면, 보라색은 하나의 색상이면서도 두 가지 색을 보유한 색, 거짓과 훼절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청년층이 손 대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이와 비슷하다. 100일 민심대장정이나 두 번의 칩거 등이 우러나와서 한 행동인지, 아니면 단순한 정치쇼인지 그 진심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손 전 대표는 지난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염두하고 ‘100일 민심대장정’을 떠났다. 100일 간 전국을 돌며 광부, 농부, 어부 등 93개 직업의 노동을 105회에 걸쳐 체험했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한참 뒤처지는 상태였다. 지지율과 인지도를 끌어 올릴 회심의 카드가 필요했고, 그 카드로 민심대장정을 선택한 것이다. 여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한다. 뉴스는 핵실험 보도로 도배가 되고 손 전 대표의 민심대장정은 묻히고 만다. 민심대장정 사진전 등이 열리기도 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 했다.

image 2006년 민심대장정할 때의 모습. 출처 '신현환의 블로그' blog.naver.com/shinphamacy

손 전 대표는 한나라당을 탈당한다. 이 날 한미FTA가 체결돼 탈당 소식도 묻힌다. 그 후, 한나라당과는 대결 구도에 있었던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한다. 파격적인 행보였다. 이유는 당시 민주당에 뚜렷한 대선 후보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때부터 기반을 잘 다져온 정동영 후보에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 다음 해인 2008년, 민주당 대표를 맡으며 18대 총선을 치르지만 81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는다.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강원 춘천 칩거를 결심한다. 그의 첫 번째 칩거다. 강원도는 여러 선거에서 큰 영향을 끼치는 캐스팅보트로 분류되는 곳이다.

2년 뒤인 2010년, 당대표로 돌아온다. 이 해에 청와대 민간인 불법사찰에 반발하며 정치인 최초로 장외투쟁에 나선다. 그런데 다음날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 장외투쟁은 강제 종료된다. 다시 2년 뒤 대권에 도전하지만 당시 문재인 후보에 밀린다. 또 2년 뒤인 2014년, 7.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그리고 전남 강진 칩거를 시작한다. 그의 두 번째 칩거다. 현재 호남 민심은 대선의 핵심을 좌우하는 곳이다. 다시 2년 뒤인 2016년 말, 정계에 복귀한다. 약 10년 간 2년 단위로 당적을 옮기고 칩거와 복귀를 반복했다.

image 국민의당 광주시당 핵심당직자 간담회. 출처 '손학규의 페이스북'

그가 단지 운이 없어서 타이밍을 못 맞춘 것일까. 확실한 것은 이 징크스를 측은하게 보는 시선보다는 불신의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 1월 3일, 유시민 작가는 JTBC <썰전>에서 "지방에 내려가 그렇게 산다는 것 자체가 언제든 다시 정계로 돌아오기 위한 포석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보좌진 오희연(가명, 27) 씨는 “사심 없는 척, 계산된 행동인 것 같다”고 했고, 서울에 사는 대학교 3학년 이신승(가명, 25) 씨는 “불리하면 언제 또 은퇴할지 몰라서 별로 믿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독특한 행보도 한두 번이어야 약발이 있는 듯하다.

‘저녁이 있는 삶’ 말고는...

전영심의 같은 논문에서 보라는 난색(warm color)인 빨강과 한색(cold color)의 혼합색이라 온도나 감정에 있어 중성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보라와 같은 혼합색은 모호하고 불안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일까. 청년층이 손 전 대표에게 내리는 평가는 무색무취의 모호함이다. ‘손학규’라고 했을 때 ‘저녁이 있는 삶’ 말고는 강렬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경기도 광명에 사는 김승준(29) 씨는 “‘저녁이 있는 삶’을 광범위하게 퍼뜨린 것 이상의 역할을 앞으로 못 할 것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image 국민의당 정책토론회에 참가 중인 모습. 출처 '손학규 페이스북'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기 때문인지 정치색 역시 모호하다. ‘저녁이 있는 삶’ 슬로건 때문에 노동자를 이야기하는 진보로 인식되는가 하면, 보수로 인식되기도 한다. 전도사 오세요(30) 씨는 “손학규는 성장을 이야기하지 분배를 이야기한 적은 없다”며 그를 보수 진영으로 분류했다. 손 전 대표 자신은 스스로를 중도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는 보수 유권자들이 중도 진보로 옮겨갈 거라고 점치면서, 이 중도 세력을 끌어올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에게는 “언제부터 중도였느냐”라며 자신의 중도 포지션을 지키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에 대한 정치색 평가는 제각각이다.

3월 빅뱅설, 과연

보라색은 스펙트럼에서 제일 나중에 위치한다. 손 전 대표의 지지율도 낮다. 칸타리퍼블릭 기준 3월 14일 지지율은 1.1%다. 정작 손 전 대표는 낮은 지지율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자신있게 '3월 빅뱅설'을 내세웠다. 본인의 잠재력이 3월에는 폭발해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대선 주자로서의 행보를 보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인다. 언론 인터뷰를 하거나 현장에서 민심을 살필 때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시종일관 웃는 표정과 자연스러운 손짓, 차분한 화법 등 긴 정계 경력을 실감하게 한다.

image 평창 동계올림픽 상황실에 방문한 모습. 오른쪽은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출처 '손학규 페이스북'

그러나 3월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손 전 대표의 존재감은 크게 뚜렷하지 않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났다느니,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회동을 했다느니 하며 각 재는 소리만 들려 온다. 국민의당 내에선 경선룰과 기간을 두고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와 신경전 벌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 보라색은 '권력'을 상징했다. 보라색 넥타이만 매는 손 전 대표는 과거 본선 진출 실패를 딛고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까. 청년층 시각에선, 아직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