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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우회자들 (2)

국회선진화법은 민주당 정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인선 2017년 03월 16일

국회선진화법은 태어날 때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국회에서 소리지르며 싸우면 안 된다는 상식적인 걸 '쪽팔리게' 법으로까지 정해야 하냐는 물음에서부터, 그러게 누가 '쪽팔리게' 국회에 망치, 전기톱도 모자라 최루탄까지 가져와 던지라고 했냐는 비아냥까지. 국회선진화법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했다. 하지만 정치혐오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국회의원들이 더는 나라 망신 못 시키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는 논리가 우세한 건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image 2011년 11월 김선동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출처 민중의소리 유투브

2012년 5월 18일 제18대 국회 마지막 날 국회선진화법은 무사히 통과됐다. 당시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건 단연 민주통합당이었다. 여당이었던 새누리당도 국회법 개정을 당론으로 정했다가 의원들의 반발로 취소하는 등 국회법 개정을 둘러싸고 당내 갈등을 겪긴 했지만, 결국 황우여 대표가 나서서 의원들 설득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2년 5월 총선에서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은 국회선진화법 통과를 총선 공약으로 걸기도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나자 태도를 바꿨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19대 국회 임기 내내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식물국회'가 됐다"며 국회선진화법을 향해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국회선진화법은 19대 국회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여당이 더는 수적 우위를 믿고 날치기 입법을 하지 못하게 됐다. 또한 '다수의 횡포'에 맞서는 야당의 폭력행위가 원천 차단됐다. 외신의 '해외토픽' 같은 코너에 자주 소개되며 한국 유권자들이 '국회=나라망신 대표주자'라고 여기게 했던 고질적 습관이 법의 강제력을 빌려서나마 고쳐진 것이다.

여당의 우려와 달리 19대 국회는 '식물'이 되지 않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회선진화법 도입으로 제 18대 국회에 비해 제 19대 국회 상임위 법률안 가결률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국회선진화법이 낳은 19대 국회 최고의 명장면은 필리버스터 정국이다. 지난해 2월 정부와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 입법을 밀어붙이려 하자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국민의당 등 야3당은 '재적의원 3분의 1이 원하면 무제한 토론이 가능하다'는 국회선진화법 조항을 방패로 삼았다. 세월호 특별법, 각종 민생법안 등을 처리하는 과정마다 정부와 여당에 밀려 무력한 모습을 보이던 더불어민주당이 반등의 기회를 잡는 순간이었다. 변화를 가장 크게 실감한 건 유권자였다. 많은 시민은 밤새 야당 의원들의 릴레이 연설을 지켜보며 난생 처음 '정치적 효능감'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게 2012년 5월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의 힘이었다.

image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입법을 막기 위해 야당이 벌인 필리버스터 릴레이는 국회선진화법이 낳은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출처 연합뉴스TV 화면 캡처

그런데 이런 국회선진화법의 운명이 위태롭다. 국회선진화법을 '국회 발목 잡는 법'이라고 비난하던 새누리당 때문이 아니라, 국회선진화법 통과에 열을 올리던 민주당 때문이다. 지난 2월 법제사법위원회 자유한국당 김진태 간사의 반대로 특검법 연장안 처리가 무산되고, 정세균 의장도 야4당의 특검법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한 게 배경이 됐다.

국회선진화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는 야당 의원들의 화법은 새누리당이 다수당이던 시절 줄기차게 써 온 화법과 닮았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늘상 비효율 프레임을 사용해, 의회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마찰음을 불필요한 것으로 몰아 갔다. 의회 내의 수적 우위만으로는 쟁점법안을 밀어붙일 수 없어진 국회를 식물인간에 빗대 '식물국회'라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2월 말 임시국회에서 선거연령 인하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경제민주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 등 처리가 무산되자 2월 임시국회가 '빈손 국회'로 끝났다는 볼멘소리가 야당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선진화법은 소수파 보호법이 아니라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국회 마비법이자 소수파 억지법"이라며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주장했다. 쟁점법안의 경우 여야 합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국회선진화법이 의무화하고 있는 탓에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못 했다는 것이다.

19대 국회 내내 국회선진화법을 공격해 온 자유한국당이 “함부로 국회법에 손대는 것은 옳지 않다”(정우택 원내대표)라고 맞받았다. 공수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지난 10일 헌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하면서 '여당 없는 4당체제'가 된 상황은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자는 야당의 목소리가 더 커지게 만들었다.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이 되고,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될 수 있는 체제'가 민주주의다. 이런 불확실성이 승자와 패자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다. 덕분에 시민들은 선거 기간이 아닌 상시에도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다. 이 원칙을 우회하고 정치가 아닌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간단하지만 위험하다. 민주주의엔 원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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