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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질문에 대처하는 문재인의 자세

'사람이 먼저다'가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권순민 2017년 03월 17일

‘페미니스트 대통령 문재인’

문재인 후보가 2월 16일,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는 연설을 통해 남기고 싶었던 이미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연설이 끝나고 난 뒤, 사람들은 ‘성소수자 나중에 문재인’을 더 많이 기억하게 되었다. 바로 아래 영상 속 상황 때문이었다. (출처: 닷페이스)

연설 3일 전, 문재인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영훈 목사 등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심지어 "동성애나 동성혼을 위해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을 안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문재인이 자신의 5년 전 공약이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그것도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폐기했다는 논지의 비판이 쏟아졌다. 영상 속 곽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전 사무국장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문재인의 페미니스트 선언 현장에 찾아간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재인은 곽 전 사무국장을 향해 “(연설을) 듣고 나서 말씀하시면 안될까요?”,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릴게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후 지지자들이 1분여간 “나중에”를 연호하며 이 여성의 입을 막았다. 장내를 정리한 것은 문재인이 아닌 사회자였다. 소란이 잦아든 이후에야 문재인은 “그래도 말씀하시는 게 목적일 것 아닙니까. 나중에 차분하게 말씀하십시다”라는 말을 남겼다.. 심지어는 "제가 여러분을 설득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는데, 거꾸로 저를 더 이상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마시고요"와 같은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성소수자들을 향해‘차분하게’와 ‘나중에’를 이야기했다.

문제는 돌발질문? 다시 찾아온 기회

당시 문재인 지지자들의 반응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왜 정부도, 여당도, 다른 후보도 아닌 '문재인'에게만 유독 그렇게 가혹하냐는 반응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돌발질문을 받는다면, 어느 대선후보라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분석도 따라 붙었다.

그랬던 문재인과 그의 지지자들에게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하여 열린 <제33회 한국여성대회>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안철수, 이재명, 심상정 총 네 명의 대선 후보가 각자의 성평등 정책을 발표하는 행사가 마무리될 무렵,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난입‘하여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쳤다.

행사의 사회를 맡았던 배우 권해효씨가 박 대표를 진정시키고 네 명의 후보들에게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문재인만 자리하고 있는 행사장도 아니었고, 문재인이 약점을 보인 성소수자 관련 이슈도 아니었다. 문재인에게 돌발질문에 대처하지 못한 지난날의 실수를 만회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재명 시장은 농성장에 찾아간 일화를 언급하며 비인간적인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가 자신의 공약이라고 답했다. 안철수 대표 역시 19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일 당시부터 폐지를 주장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밝혔다. 심상정 대표 역시 1600일간 이어진 농성을 알고 있다며 동조 입장을 밝혔다. 마지막, 문재인 후보의 차례가 다가왔다.

“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 드렸는데요, 그래도 제 마음이나 의지가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부족한 점이 많을 겁니다. 오늘은 성평등 세상 만들겠다고 약속 드렸는데, 마찬가지로 제가 여성들의 마음 아픔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들을 여성들이 함께 채워주신다면 열심히 정말로 그런 대통령되고 그런 세상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한 의견에 대한 답변이 아닌, 본인이 선언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에 대한 마무리 발언에 가까웠다. 완벽한 동문서답이었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 측은 행사 이후 차별금지법 도입 등을 포함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개별 질문은 받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장애인의 돌발질문에 답변을 하지도, 질문을 받지도 않았다.

문재인은 왜 답변을 회피했을까?

image 2012년 10월, 장애등급제 폐지 의견을 피력하는 문재인 후보. YTN 뉴스

다른 세 명의 후보는 모두 질문에 알맞은 답변을 내놓았다.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장애 문제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문재인은 답변하지 않았다. 차별금지법 때와 같이 장애등급제 폐지 문제 역시 그에게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그는 지난 대선 때부터 이번 대선 국면에 들어선 이후까지 꾸준히 장애등급제 폐지론을 펼쳐왔다. 2012년 10월에 있었던 시각장애인들과의 산행에서도, 같은 해 11월에 있었던 ’국민명령 1호 프로젝트‘에서도, 12월에 있었던 ’10대 인권 과제‘ 발표에서도 그는 일관되게 장애등급제 폐지를 역설한다. 올 1월 15일에 있었던 고양시청에서의 강연에서도 그는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공약 중 하나가 장애등급제 폐지였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입장을 밝힌다.

차별금지법 문제 때처럼 답변을 하기 어려운 질문도, 심지어 자신의 연설 중 말이 끊긴 상황도 아니었다. 꾸준히 하나의 입장을 견지해온 이슈였으며, 사회자가 주도권을 되찾은 후 모든 후보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 상황이었다. 또한 문재인 후보는 네 명 중 가장 마지막으로 답변을 했다. 그에겐 준비된 답변이 있었고, 준비할 시간도 충분했던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지난 대선에서의 공약 중 하나가 장애등급제 폐지였음을 이야기하며 답했다면,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 동시에 ‘나중의 날’ 이후 도마 위에 오른 그의 인권 감수성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인상을 남길 수 있었을 테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왜 답변을 회피했던 것일까?

필요한 것은 ‘절차와 원칙’?

image 지난 2월 13일, 한기총을 방문한 문재인 후보. CBS 뉴스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들은 ‘나중의 날’ 당시 “남이 연설을 하는 자리에 와서 말을 끊고 답변을 요구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문재인 후보가 자신의 연설이 끝난 후, 나중에 말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을 했는데도 막무가내식으로 소리를 지른 사람이 문제다”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결국 ‘돌발질문’이 문제라는 것이며, 어떤 의견이든 ‘절차와 원칙’을 지켜가며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문재인이 정치생활 내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절차와 원칙에 대한 신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나중의 날' 행사에서 문재인 후보의 연설 이후 연단에 오른 강혜숙 한국 이주여성 인권센터장은 “이런 자리에서 기습 발언하실 수밖에 없었던 자매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라는 말을 남겨 잔잔한 감동을 몰고 왔다. 강 센터장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는 분명 기습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돌발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는 성소수자들이 그러하며,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는 장애인들이 또한 그러하다.

성소수자의 42%는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이유로 가족과 직장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66.8%는 자살 충동을 느끼며 25.5%는 실제 자살을 시도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차별금지법’은 가시화되지 않는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낼, 차별과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성소수자를 보호해줄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장애등급제 폐지 역시 마찬가지다. 장애의 다양한 양상에도 불구하고 장애등급제에서 ‘중증 장애’ 판정을 받지 못하면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활동보조인이 지원되지 않는 시간에 화재가 발생해 집안을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한 故 김주영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성소수자와 장애인은 차별금지법 제정과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수 년 째 싸워오고 있지만, 변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대선 후보를 만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형편이다.

반면, 그 대척점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이 그러하다.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의제가 있을 경우 문재인과 같은 유력 대선주자 먼저 찾아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그들의 걱정을 덜어준다. 실제로 위 사진 속 만남에서 개신교계는 차별금지법뿐만 아니라 종교인 과세 이슈에 대한 교계 차원의 우려를 전달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냈다. 성소수자, 장애인들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은 성소수자·장애인들과 달리 무례하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기습발언을 해야 할 이유도, 행사장에 찾아가는 수고를 다해가며 돌발질문을 던질 이유도 없다.

돌발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image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 대선후보 포스터. JTBC

문재인은 자신을 향해 절규하던 장애인과 성소수자에게 ‘나중에, 차분하게, 개별 질문은 받지 않는다’는 답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보수 기독교계 인사들을 직접 찾아가서는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을 남겼다. 같은 국민을 대하는 유력 대선후보의 자세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상반된 태도였다.

‘절차와 원칙’을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단지 ‘절차와 원칙’만을 바라보고 있기엔 너무나도 절박한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들에게 '절차와 원칙'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말라,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차례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사용했던 표어이다. 그의 이 멋진 말이 공허해지길 바라지 않는다면 그는 '돌발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말을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것이다.


커버 사진: 문재인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