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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후보는 어떻게 패배하는가

탱크를 타는 정치인들의 역사

박상현 2017년 03월 20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에서 보수진영으로부터 안보 문제로 공격을 받는다. 평소 진보적인 태도를 지키며 여당이 추진하면서 반대여론에 휩싸인 미사일 방어전략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을 여당과 보수진영이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진 것이다. ‘나라를 지키지 못할 연약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극복하지 않으면 중도 표를 끌어올 수 없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민주당은 긴급대책회의를 연다. 우리 후보를 어떻게 하면 '강한 지도자’로 포장할 수 있을까? 민주당의 이 후보는 법을 공부한 모범생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실은 험하다는 강원도 문산에서 군 생활을 보낸 기록이 있다. 그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 문제는 그게 젊은 시절이었다는 것. 그럼 지금도 안보의식이 투철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렇다.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다시 군복을 입히자. 군복을 입히고, 방탄헬멧을 씌우고, 거기에 후보의 이름을 붙이자. 그러면 후보의 안보의식에 대한 보수와 중도층의 의심을 말끔하게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민주당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아니다.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 후보의 이야기다. (듀카키스는 한국 문산에서 군생활을 했고, 레이건 대통령이 추진하던 미 본토의 미사일 방어계획인 Star Wars에 반대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H.W. 부시 공화당 후보를 상대했던 듀카키스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군의 주력 탱크인 M1 에이브러햄스 탱크를 만드는 공장을 방문해서 탱크를 타고 문제의 그 ‘탱크 사진’을 찍었다.

image 이미지 출처: Boston Globe/AP

"Dukakis In the Tank"

결과는? 최악이었다. 듀카키스를 반대하던 보수층은 비웃었고, 레이건의 보수정권 8년을 끝낼 진보적인 후보를 기대했던 진보진영은 등을 돌렸다. 결국, 레이건 시절에 부통령을 지낸 '아버지 부시’가 공화당 정권을 4년 더 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 대선 사상 최악의 결정으로 불리는 듀카키스의 PR 캠페인은 “Dukakia in the tank”라는 유명한 문구로 남았다. “홍보에 실패해서 역효과가 나는 상황”을 가리키는 영어표현이 되었다.

문재인 후보는 며칠 전 대선 주자 토론회에 나와서 “저는 특전사 공수부대 시절 주특기가 폭파병이었다”며 “폭파 최우수상을 받았고,” “전두환... 장군”(후에 반란군 우두머리로 정정)으로부터 받은 표창도 강조했다. 그가 공수부대 출신인 건 이제 온 국민이 아는데, 굳이 ‘내 인생의 한 장면’으로 군 시절 사진을 들고나와 “폭파”나 “전두환 장군” 같은 말을 한 것이 중도와 보수에 대한 구애의 제스처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가진 문재인의 이미지는 '노무현과 정치역정을 함께 한 인권변호사 문재인’이다. 문재인과 그의 선거캠프의 전략은 인권변호사의 이미지로 진보진영의 표를, “특전사 폭파병”의 이미지로 중도와 보수표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생각이다. 유권자들이 그들의 생각처럼 단순하다면 말이다.

image 이미지 출처: 동아닷컴 아카이브

문재인의 군복 코스프레는 누구를 기쁘게 할까

문재인이 마치 탄핵반대집회에 나온 박사모 회원들 같은 모습으로 군복과 베레모를 쓴 사진으로 중도와 보수를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일 뿐 아니라, 중도, 보수 유권자들을 단순하고 단일한(monolithic) 집단으로 보는 진보 특유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라:

홍준표 도지사가 어느 날 느닷없이 노란 머플러를 하고 나오면 (진보적인) 당신은 마음을 바꿔 홍준표를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뭐로 보고 진보 흉내를 내는 건가’하고 오히려 기분이 나빠질 것 같은가? 당신이 노란 머플러 하나 때문에 홍준표에 대한 지지로 돌아설 마음이 없다면, 보수 유권자가 문재인의 군복을 보고 마음이 동할 것으로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보수 유권자들이 단순한 사람들이라는 생각 이상이 아니다.

보수유권자들을 데려올 수 없다면, 문재인의 특전사 경력을 강조하고, 아직도 총검술을 잘 한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은 문재인을 지지하는 진보진영, 특히 여성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올 어설픈 전략이다. 여성계는 이미 2012년 문재인의 ‘대한민국 남자’ 캠페인에 반발했고, 문재인 진영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문재인의 군복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문재인을 지지하는 남성들 중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후보들이 핵심지지층을 구성하는 '키보드 워리어'를 가지고 있지만, 문재인에게는 “페미”와 “메갈”을 싫어하고 그들과 키보드 전쟁을 불사하는 지독한 소수의 지지자들이 존재한다.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여기지만, "군 복무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면서 권리만을 주장하는” 한국의 여성들을 싫어하는 이 소수의 집단에게 문재인의 군복 코스프레는 더없는 만족감을 준다. 남성성을 무한히 강조해도 인권변호사라는 전력은 여성인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은 소수이며, 이미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진보 후보는 어떻게 패배하는가

결국 문재인의 전략은 의도와는 다르게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진보진영 내의 편 가르기를 할 뿐, 새롭게 얻어낼 지지층은 거의 없는 전략이다. ‘대한민국 남자, 문재인’이라는 표어에서 한국의 여성들은 ‘여자는 2등 시민’이라는 무언의 메시지(subtext)를 읽는다. 물론 문재인의 공격대상은 병역의무를 회피하고도 권력을 쥐고 있는 보수진영의 의원들이다. 그러나 항상 뜻대로 전달되지는 않는 것이 홍보의 메시지이고, 문재인의 남성성 전략이 보수 유권자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2012년에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 왜 그럴까?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마이클 듀카키스의 캠페인이 왜 하필 탱크 공장을 코스프레 장소로 선택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 그 사진을 찍기 2년 전인 1986년, 영국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자신의 지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3번째 임기를 위한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승리한 포클랜드 전쟁(1982)에 대한 국민의 기억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고, 노조탄압과 사유화 정책으로 인기는 급락했으며, 심지어 전략적 군수산업이나 안보를 등한시한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처 총리는 총선 운동 중에 독일에 있는 나토 기지를 방문해서 영국제(!) 챌린저 탱크에 올라타는 홍보 캠페인을 한다. 영국의 유니언잭이 휘날리는 남성적인 탱크에 (마치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누비던 영국인을 연상시키는) 흰색 머플러를 머리에 쓴 대처의 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고, 국민은 환호했다. 당연히 캠페인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대처는 재집권에 성공했다.

image 이미지 출처: BBC

하지만 그 성공은 보수당 당수인 대처가 자신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홍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반증이 듀카키스이다. 민주당의 후보가 포클랜드 전쟁으로 영웅이 된 영국 보수당 당수의 홍보전략을 가져온 것이 민심의 외면을 받은 중요한 이유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듀카키스를 누르고 백악관에 입성한 조지 H. W. 부시 역시 비슷한 실수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레이건 8년의 성공을 힘입어 보수적인 가치를 강조하며 집권에 성공한 아버지 부시는 4년 후 자신의 인기가 줄어들면서 중도를 공략하기 위해 자신의 등록상표와 같은 증세반대 정책(“Read my lips: no new taxes”)에 반하여 세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그 결과 중도 표를 가져오기는커녕 보수진영의 실망으로 이어졌고, 결국 아칸소 출신의 젊은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에게 패하고 만다.

문재인은 현재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는 후보이지만, 중도 표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평가에 항상 시달리는 정치인이다. 특히 안희정 도지사가 ‘선의론’을 앞세워 중도를 공략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선에 들어가면 자신도 중도 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압력을 받는 듯 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군경력의 강조는 현명한 전략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 전략이 최근 들어 진보진영을 괴롭히고 있는 페미니스트-반 페미니스트의 대결에 기름을 부을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커버 이미지 출처: New States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