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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과의 전쟁

누가, 왜 현금을 없애려고 하는가?

박상현 2017년 03월 22일

세계의 각국 정부들이 현금과의 전쟁에 나섰다. 인도는 작년 11월에 500루피와 1000루피 지폐의 사용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해서 실행에 옮겼고, 호주 정부 역시 작년 12월에 100달러 지폐 폐지를 제안했다. 프랑스는 1천 유로 이상의 거래에서 현금 사용을 금지하려고 하고 있으며, 베네수엘라는 이미 100 볼리바 지폐를 금지했다.

그리스는 한술 더 떠서 개인금고를 비롯해 은행이 아닌 (즉, 추적이 되지 않는) 장소에 1만5천 유로 이상을 보관할 때는 반드시 신고를 하도록했고, 스웨덴은 농촌지역을 시작으로 아예 현금자동인출기(ATM)를 없애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20년 까지 '동전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계획 하에 소액의 거스름돈을 교통카드에 입금해주는 서비스를 올해 동안 시범운영한 뒤에 내년 부터 본격화할 예정이다.

정부와 중앙은행(central bank)들이 없애려는 것은 현금이지만, 그 이유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용자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다. 각국 정부는 불법적인 거래를 하거나 세금을 포탈하는 범죄자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이고, 그 전쟁의 가장 효과적이 무기가 현금의 폐지이다. 그렇게 하면 세법을 바꾸지 않고도 (탈세를 막아서) 세수는 늘어날 것이고, 그렇다면 ‘유리지갑’을 가진 일반 시민들이 내는 세금은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에 준법시민들에게는 오히려 이익이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가지고 다니기 불편한 현금이 사라지는 이익까지 누릴 수 있다. 적어도 정부와 중앙은행의 주장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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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인류사회의 역사와 함께해온 현금은 이제 사용자 입장에서도 점점 불편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외출할 때 교통카드를 들고 나가는 것도 귀찮아서 스마트폰에 끼워 넣는 세상에 종이돈과 동전을 일일이 챙기는 것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실제로 현금의 사용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경우 모든 상거래에서 현금사용의 비율은 현재 40%에서 감소세에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현금을 사용하지 않은 거래는 2015년에 4천2백6십억 달러로 2010년에 2천8백5십억 달러에서 5년 만에 50%의 증가율을 보였다.

현금 없는 사회의 승자

그렇다면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것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지만, 모두는 아니며, 특히 현금 없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큰 이익을 보는 집단은 따로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현금 없는 사회로 옮겨가는 것은 각 국가의 자연스러운 추세가 아니라, 이들 이익집단들의 의도적인 노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The Heretics’s Guide to Global Finance'(2013)의 저자인 브렛 스캇(Brett Scott)은 현금없는 사회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진전(natural progress)”이라고 보는 태도가 순진하거나 혹은 불온한 시각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현금없는 사회에서 모든 거래는 가상의 화폐를 사용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중개자를 거쳐야만 가능하기 때문인데, 그 중개자들은 거래 시스템을 관리하면서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캇은 특히 수수료로 돈을 버는 신용카드사를 지목한다. 마치 P2P로 파일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보는 음반사처럼, 신용카드사에게 개인 간의 현금거래는 '우리가 놓친 사업기회'일 뿐이다. 그들에게 현금 없는 사회는 시장의 확장임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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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은행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금은 각국의 정부가 발행한 돈이지만, 일단 은행에 들어가서 송금과 카드결제, 혹은 그 외의 (현금이 아닌) 방법으로 거래할 경우 엄밀하게는 거래과정에서 국가화폐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은행들이 현금자동인출기를 이용할 때마다 높은 수수료를 물리고, 더 나아가 인출기 숫자를 줄여서 사용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용자들이 국가화폐로 “환전”하지 않고, 은행 시스템 내에서 디지털 숫자로만 이동하는 은행화폐 만을 사용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신용카드사, 은행과 경쟁 구도에 있는 정부나 중앙은행 같은 준정부기관 역시 현금 없는 사회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세금이나 통화정책을 위해서는 모든 돈의 흐름을 감시할 필요가 있는데, 자신이 발행한 물리적인 화폐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 추적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현금 없는 사회의 패자

브렛 스캇은 흥미로운 사고의 전환을 권한다. 은행이나 카드거래를 현금없는(cashless) 거래라고 부르는 대신, 현금을 사용하는 거래를 은행없는(bankless) 거래라고 불러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 일상에서 개인 간의 거래에 제3자가 끼어들어서 이익을 보고 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금거래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은 탈세자와 마약상, 불법 무기상, 그리고 뇌물을 주고받는 범죄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현금없는 사회를 주장하는 쪽은 항상 그 부분을 강조한다. “현금없는 사회에서는 범죄자들의 돈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오래 주장이다.

하지만, 블룸버그 뷰의 일레인 우(Elaine Ou) 그런 주장의 오류를 지적한다. 돈세탁이 이루어지는 곳을 살펴보면 1위가 은행, 2위가 조세회피처 등의 서비스이고, 정작 현금을 이용한 돈세탁은 3위에 불과하다는 것. 따라서 대규모 탈세를 잡고 싶다면 현금을 타깃으로 할 것이 아니라 (현금없는 사회를 추진하는) 은행권부터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는 “인류가 정말 잘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세를 회피하는 것”이라며, 현금을 없앤다고 쉽게 탈세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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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과정에서 일반인들은 수수료를 챙기는 중개인을 거치지 않고 거래할 수 있는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도미닉 프리스비(Dominic Frisby)는 특히 가난한 계층의 피해가 가장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현금없는 사회를 강조하는 것은 돈을 은행에 맡기고, 금융시스템을 사용하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일 수록 금융시스템에 들어오기 힘들다. 그들이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될 위험은 현실적인 위험이다."

금리가 갈수록 낮아져서 이제 마이너스 금리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세상에서 선진국 은행들은 은행 통장에 잔고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는 수수료를 받고 있다. 우리 돈으로 몇백만 원을 계좌에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의 경우, 매달 1, 2만 원씩의 수수료를 떼지 않으면 은행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현금자동인출기에서 떼어가는 수수료를 생각하면, 그들은 현금이 가장 경제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현금없는 사회로의 이전은 그들의 거래수단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브렛 스캇은 (현금을 사용하는 사회에서) 범죄자들은 존재하겠지만,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감시 자본주의 사회보다는 정상적인 구식 자본주의가 낫다고 주장한다. 현금 없는 사회는 은행과 정부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단체의 (기부금 수수 등의) 모든 거래를 손쉽게 중단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일반시민이나 단체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비록 작은 도둑을 없애지 못하더라도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는 사회를 원하는가. 각국의 유권자가 답해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