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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개새끼론'이라는 허상④] 누가 개새끼인가?

김희림 2017년 03월 27일

‘공부하는 학생’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금지된 것이 많다. 연애도, 취미 생활도. 학생은 공부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니 ‘공부하는 학생’은 당연히 중의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의적인 강조를 통해 이 말의 발화자는 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라는 익숙한 말은 두 가지 뜻을 갖는다. 청소년은 아직 사회인의 자격이 부족하니 더 커야한다는 뜻과 한눈팔지 말고 대학 진학에 집중하라는 뜻이 혼재한다. Writer 윤지원이 ‘20대 개새끼론’이라는 허상③에서 밝혔듯이 학생들에게 대입은 블랙홀이다. 입시 앞에서 다른 의제는 사라진다. 학교는 정치 진공상태를 유지하기를 강요받는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아직 사회인의 자격이 부족하고 대입에 모든 것을 걸어야하는 존재이기에, 역설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정치를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일은 금지되어있다. 작년 여름에 청소년이 정당에 가입할 수 있도록 추진하자는 논의가 공식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결국 중앙선관위는 정치관계법 개정의견 소위원회에서 청소년 정당가입 허용 조항을 신설 조항에 넣지 않기로 했다. 학교 교육의 기형화를 초래한다는 것이 청소년 정당가입 반대론자들의 주된 논지였다.

정당 가입권은 물론 청소년에게는 선거권도 없다. 만 18세가 되면 취업도 가능하고 운전면허도 딸 수 있으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배우자로서의 자격도 갖출 수 있지만 선거는 할 수 없다. 청소년들은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인격과 가치관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이 주된 논거다. 군대에서 수류탄은 던질 수 있지만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는 던질 수 없다.

강산이 세 번 바뀌면, 투쟁도 바뀌어야한다.

그렇게 정치에 접근할 수 없던 청소년기를 보내고 20대가 되면, 정치에 참여하지 않아서 사회가 이 모양이라는 진보적인 어른들의 호통과 마주하게 된다. 정치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고민할 기회가 없었던 10대는, 그러나 20대가 되자마자 국가의 책임을 져야하는 세상의 중심이 된다. 정권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젊은이’가 된다.

20대가 듣기에는 당혹스럽다. 슈퍼히어로물의 주인공처럼, 시키는 대로 객체적인 삶을 영위하기 바빴는데 어느새 세상을 좌지우지할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일반 시민이 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던 때 지금의 20대 초반들은 고등학생이었다. 정당 가입과 선거가 불가능한 고등학생들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고등학생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의견을 피력했다면, 부모 세대는 그들의 이야기에 과연 귀 기울였을까?

image 1987년 6.10 민주항쟁이 남긴 유명한 사진. 2017년의 투쟁은 훗날 어떤 사진으로 남아야할까?

청소년에게 정치에 대한 접근을 막는, 그러나 청년들에게 정치에 대한 책임을 넘기는 담론은 대한민국 사회의 기성세대인 386 세대들에 의해서 만들고 퍼뜨렸다. 그들이 청년 세대에게 원하는 것은 거시적인 체제 전복을 향한 투쟁이다. 악마적인 전두환 정권과의 투쟁으로 점철된 젊음을 살았던 그 세대에게는 대통령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박근혜를 탄핵하고 민주당에게 정권을 건네주는 일이 최우선이다. 그들에게 20대의 과제는 거리로 나가 시위하는 것과 선거일에 놀지 않고 민주당에게 투표하는 일이다.

그런데 더 고민해볼 일이다. 1987년에 전두환을 몰아냈던 투쟁의 방식과 목표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가? 2017년을 사는 젊은이들도 1987년을 살았던 젊은이들과 같은 지점을 지향(해야)하는가? ‘하면 된다’의 시대는 저물고 ‘해도 안된다’라는 헬조선 담론이 지배적인 지금 위의 질문들에 긍정하기는 어렵다. 거시적인 정치 투쟁이 대학가를 메웠던 때와 달리 지금은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투쟁이 대한민국 곳곳의 20대의 삶을 채우고 있다.

빨간 타이즈를 입은 악마

선배 악마가 신입 악마에게 인간을 유혹해 타락하도록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편지를 묶은 책,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선배 악마 스크루테이프는 말한다.

“현대인들은 ‘악마’를 대체로 희극적인 모습으로 상상한다는 사실이 너에게는 힘이 될게다. 혹시라도 환자 - 인간 - 의 마음속에 악마가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면, 그 즉시 몸에 딱 달라붙는 빨간 타이즈 입은 꼴 따위를 보여 주거라.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 악마의 존재를 오히려 더 안 믿게 될 것이다)”

386 세대에게 정치적 투쟁은 빨간 타이즈를 입은 악마와의 힘겨루기다. SNS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갖는 중년들이 박근혜를 닭에 빗대고 그가 여성인 지점을 모욕하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애초에 희화화해서 이길 수 있는 적은 적이 아니다. 80년대보다 훨씬 복잡하고 내밀한 사회적 갈등들이 다원화된 지금, 20대들에게 악마는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시공간에 존재한다.

최저시급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생에게, 그리고 숱한 성희롱과 성추행으로 고통 받는 젊은 신입 직원에게 악마는 점장이고 직장 상사이지, 대통령이 아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투쟁해야할 대상은 훨씬 작고 분명하게 일상으로 내려앉았다. 일상의 영역에 매몰된 우리의 정치성은 거대 담론의 달콤함이 구원할 수 없다. ‘요즘 젊은 것들’이 왜 정치에 관심이 없고 투쟁에 나서지 않는지 수많은 ‘한때 돌 좀 던졌던’ 아저씨들이 궁금해 하지만, 반문하고 싶다. 2017년을 사는 20대의 연대와 투쟁의 대상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20대가 짱돌과 화염병을 든다면, 그에 맞는 이들은 386 세대가 될 것이다.

누가 개새끼인가

‘세대 갈등’을 도모하려는 게 아니다. 한때 386으로 날리셨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기득권이라는 것을 짚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이제 높은 곳에 앉아 20대에게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합격시키고 떨어뜨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과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산다. 386 세대가 금지한 것에 접근하지 못하는 유년 시절을 보냈고, 그들이 곤고하게 다져놓은 구조에 편입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는 20대가 386 세대를 극복하고자 하는 과정은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고 기득권을 향한 ‘투쟁’이다.

그렇게 20대는 386세대가 미처 책임지지 못한 영역과 투쟁하면서 살아야한다. 묽은 피와 구슬땀을 흘리며 투쟁한 시위가 끝나면 꼭 여성들에게 빨래를 맡겼던 그들의 젊음이, ‘386’이라는 말에서도 -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 이미 묻어나는 당시로서는 대학생이라는 지식인 계층에서 안정적으로 엘리트 의식을 느꼈던 그들의 젊음이, 성평등 지수 하위 국가와 뿌리 깊은 학벌 이데올로기를 만들지 않았는가. 그 속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성차별과 학벌주의와 싸워야한다.

image 작년 6월 6일에 열린 '여성혐오 세상을 뒤엎자' 시위. 지금의 20대가 뒤엎을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사진=일다 블로그

시대에는 시대의 과제가 있다. 지금의 20대에게 시대의 과제는, 매일 삶에서 마주치는 80년대로부터 남겨진 구조적 문제와 싸우는 것이다. 87년은 끝나지 않았다. 그 역동적이었던 만큼 성급한 투쟁이 남긴 유산 속에서 20대가 태어났다. 지금의 20대는 그 구조 속에서 미시적인 삶 속에서의 전쟁을 반복하고 있다. 80년대와 똑같은 수단과 목적으로 투쟁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시위와 선거에 참여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Writer 하민지가 '20대 개새끼론'이라는 허상②에서 밝혔듯이 선거는 절대선(善)이 아니다. 투표 외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정치 참여의 다양한 방법론을 배제하고 선거에 모든 여론을 집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선거철마다 그러했듯이, 앞당겨진 대선을 맞아 20대들의 정치 참여가 미진함을 지적하고 그것이 정치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논의가 다시 활발하다. 하나의 담론으로 자리 잡은 이 논의를 ‘20대 개새끼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386 세대가 만들어놓은 구조 속에서 자랐으며 그 구조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삶 속에서 미시적인 투쟁을 반복하는 20대에게 그 책임을 돌릴 수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Deepr는 4편의 기사를 통해 20대가 개새끼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제 ‘20대 개새끼론’이라는 허상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이제 누가 개새끼인가?


['20대 개새끼론'이라는 허상①] 20대 개새끼론은 허구다
['20대 개새끼론'이라는 허상②] 20대가 투표하는 이유, 하지 않는 이유
['20대 개새끼론'이라는 허상③] "그래, 내가 '개새끼'다."
['20대 개새끼론'이라는 허상④] 누가 개새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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