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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왓슨의 실망스러운 페미니스트 '벨'

윤지원 2017년 03월 29일

엠마 왓슨이 노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디즈니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돌려 봤던 어릴 적 자신을 아직도 기억한다면, 왓슨이 얼마나 <미녀와 야수>의 벨을 완벽히 재현할 것인지 크게 쏠린 관심과 기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해리 포터> 이후로 여러 작품에 도전했지만 아직도 헤르미온느의 이미지를 지울 수 없기에 이번 기회는 그녀에게도 배우로서 좋은 전환점이 될 터였다. 게다가 디즈니라는 거대 브랜드를 등에 업고 전세계가 아는 <미녀와 야수>를 택한 것은 상당히 안전하면서도 영리한 선택으로 보였다.

엠마 왓슨은 2014년 UN 양성평등 홍보대사로 선정되면서 왕성하게 여성 인권 운동을 해 왔다. 그녀의 UN 연설은 너무나 유명해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파급력이 큰 여성 페미니즘 셀러브리티 중 하나로서 왓슨은 자신의 신념과 직업적 활동을 적절히 병행할 줄 알았다. 최근 터진 토플리스 화보 논란은 2세대와 3세대 페미니스트의 담론 충돌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페미니스트 셀레브리티로서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를 보여준다. 즉 왓슨은 스스로를 상품화해서 이미지를 팔아야 하는 배우임에 동시에, 여성 인권을 효과적으로 대변할 스피커의 역할도 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image 예쁘고 똑똑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엠마 왓슨과 벨은 동일시됐다. 사진=Disney Korea 페이스북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스트 왓슨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팬들은 이번 작품 선택에 의아함을 품었다. 젠더 담론에 대한 디즈니의 강력한 스토리텔링 기법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디즈니는 매우 교묘하게 잘 감추어져 있는 기호와 상징을 이용해 전세계 아이들의 성 정체성 수립에 큰 영향을 끼치고, 성 역할을 강화한다. 동화 역시 마찬가지다. 동화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형태로 아이들에게 다가가 강력한 교훈을 심어주고 떠난다. 아동 심리학자인 브루노 베텔하임의 책 <옛이야기의 매력 2>(시공주니어)에 따르면 옛이야기는 어린이로 하여금 그 문제에 대해 잠재의식에 호소함으로써 미리 준비를 시킨다. 이런 개념들이 어린이의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에 일단 깊이 새겨지고 나면, 시간이 무르익어 그런 문제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때에 어린이는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는 비판을 받아 왔다. 디즈니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 주인공이 위험에 처하면 프린스 챠밍이 나타나 구해주고 결혼으로 보상을 받는 구조를 취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 성격을 변화시키면서 주체적인 성격을 얹기 시작했다. 왕자를 기다리기만 하는 수동적인 공주들에서 직접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공주 캐릭터를 점차 등장시킨 것이다. <라푼젤(2010)>,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 <겨울왕국(2013)>, <모아나(2016)>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등장한 신(新) 공주 캐릭터다. 여전히 미진한 점은 있지만, 디즈니는 모험의 목적이 왕자와의 사랑(결혼)인 공주 캐릭터에서 탈피한 여자 주인공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2017년작 <미녀와 야수>는 디즈니가 형식적으로나마 지향하고 있던 지점에서 후퇴했다.

원작의 명백한 한계

먼저, <미녀와 야수>는 (다른 동화들이 그렇듯) 애초에 여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예절교육이 목적이다. 잭 자이프스의 저서 <동화의 정체>(문학동네)에 따르면, 가장 유명한 버전이자 디즈니가 원작으로 삼은 버전은 1756년 르프랭스 드 보몽 부인의 작품이다. 보몽 부인은 '여자란 모름지기 복종해야 한다'는 어조를 사용했다. 보몽 부인이 독자를 사춘기 이전의 여아들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이야기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성교육 자료로 활용됐다. 여자아이들은 처음에 남편이 야수처럼 무섭게 굴어도 힘든 상황에서 도망치지 말고 사랑과 현명함, 인내심으로 그를 돌봐주면 왕자(귀족)로 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체득하게 된다.

image 이번에 개봉된 <미녀와 야수> 골드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텀블러 '페미니스트 디즈니'의 운영자 마리 로저스는 <미녀와 야수>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야수가 언어적 학대를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의 덩치를 이용해 벨을 겁준다. 벨이 갇혔다는 건 이 상황을 더욱 황당하게 만든다. 여성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면/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오래 보여주면 결국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게 된다는 '괜찮은 남자 nice guy' 개념을 영속화시킨다." 전형적인 '여성 인내 서사'다. 남성이 괜찮은 남자로 변모하는 동안 여성은 고통을 감내하고 그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인내하고 헌신해야 하며 현명하게 도와줘야 한다. 이 와중에도 그녀가 미녀여야 함은 물론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순종과 복종, 겸손, 근면, 인내에 있는 반면, 남성의 미덕은 자제와 예의, 이성, 불굴의 의지에 있다. 또한 ‘미녀와 야수’의 각각의 버전에서 작품의 지형이 문명화 과정과의 관계 속에 전개되는 것을 보면, 여성 인물이 ‘올바른 시민’이 되는 것은 짐승 같은 남성에게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 할 때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자기 부정을 통해서 여성 인물은 모든 여자가 옛날에도 원했고 지금도 원한다고 가정되는 그것 - 결혼 -에 도달할 수 있다. 이때 결혼은 남성에 의한 지배의 형태를 취한다.(중략) 흥미롭게도 남성은 언제나 올바름과 합리성을 대표하는 존재이며, 그러한 남성을 구원하거나 파멸시킬 힘을 가진 것은 여성이다. 세상에 혼란이 생기는 것은 결코 남자 주인공의 책임이 아니다. 남성은 언제나 희생자이자(보통은 사악한 여자 요정의 마법에 걸려 짐승이 된 존재) 부르주아적 합리성(raionnement)의 모델이다. - 잭 자이프스, <동화의 정체> 중 

image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월트디즈니,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후퇴한 디즈니의 소극적인 리메이크

이런 서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을 왜 굳이 선택했을까 걱정하던 팬들을 달랜 것은 왓슨의 인터뷰였다. 영화 개봉 전, 왓슨은 인터뷰에서 "어린 내게 벨은 대단한 캐릭터였고, 진짜 사랑하는 역할이었기에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거침없는 여성"인 벨을 "올바르게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벨에게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창의적인 면을 추가하고 싶었다"고 언급해 페미니스트 셀레브리티로서 역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왓슨과 같이 작업한 배우들과 제작진, 디즈니 역시 이런 요소를 적극 홍보했다. 감독인 빌 콘돈은 "(벨은) 진정한 의미로 디즈니의 첫번째 현대판 공주다. 결혼 상대를 찾는 것보다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에 관심이 있다. 벨이 21세기의 새로운 여성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고, 르푸 역의 배우 조시 게드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것”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작사는 엠마가 연기할 때 대표적인 여성 억압 의복인 코르셋을 입지 않았고, 발명가적 기질을 더 돋보이게 하는 장면이나 마을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가르치는 장면 등을 활용해 벨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을 더욱 강조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것은 디즈니 역시 왓슨 개인이 페미니스트 운동가로서 걸었던 행보를 의식했다는 것이고, 그 점을 적극 활용하고자 의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왓슨의 작품 선택에 의아해했던 팬들은 인터뷰를 보고 안심했고, 그녀가 얼마나 새로이 페미니즘적으로 해석한 '21세기형 벨'을 완성할 것인가 큰 기대를 품었다. 즉 왓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벨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현재와 맞지 않은 원작의 몇몇 요소들-장면, 장치, 성격 등-을 수정 및 발전시켜 보여줘야 하는 역할을 수행했어야 한 것이다.

image <말레피센트> 스틸컷.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한편, 디즈니가 기존 동화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이었던 여성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팬들은 조금 더 믿을 구석이 있었다. 2014년 개봉했던 <말레피센트>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아름다운 공주의 행복한 삶을 저주하는 사악한 마녀라는 전통적인 '여적여' 구도에서 벗어나 여성과 여성 간의 유대와 사랑을 그려낸 파격적인 스토리를 선보였다.

강은진이 2014년에 발표한 <디즈니 영화에 등장하는 마녀 캐릭터의 기초학적 분석>에 따르면 기존의 마녀는 사악하고 추한 늙은 여자로 그려졌지만 우아하면서도 강인한 이미지로, 오랫동안 전 세계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롤 모델이 되어 왔던 안젤리나 졸리가 새 작품의 마녀를 맡으면서 매력적이며 입체적인 여전사로 그려졌다. 팬들에게는 디즈니가 원작을 개작할 때 새로운 여성상에 대한 사회의 니즈를 수용할 역량(capacity)이 있는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에, 왓슨이 그려낼 벨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던 것이다.

눈가리고 아웅한 수준의 변화

그러나 영화관에서 상영된 2017년산 <미녀와 야수>는 상당한 실망감을 안겨준다. 벨은 기껏해야 세탁기를 발명하고, (보통 여자와 달리)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마을에서 이해할 수 없는 괴짜로 욕먹고, 여자아이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쳐주다가 봉변을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솔직히 저 짧은 장면이 왓슨과 디즈니가 홍보했던 '21세기 새로운 현대판 여성 캐릭터 벨'이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벨은 아무 생각이 없는 작고 평화스럽고 멍청한 마을에서 유일하게 현실의 한계를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책을 몇 번이고 다시 빌려서 읽고 또 읽는다. 벨은 언덕에 올라 '더 넓은 세상에서 모험을 하고 싶다'고 노래하고 정해진 운명대로 살지 않고 멋지게 사는 자신을 그린다. 하지만 작은 마을에서 도피하고 싶어했던 벨이 선택한 곳은 야수의 성이다. 책을 통해서 먼 나라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를 꿈꾸듯 상상했던 벨이 왜 성에 머물고 마는가. 아무리 야수의 성이 넓고 고풍스럽고 아름답고 금으로 치장되어 있어도 전 세계에 비해서는 좁다. 원작에서는 없었던 '상상하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마법책'의 등장이 어색하고 개연성 없게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설정 상의 충돌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야수 곁에 남아 있기는 해야 하고, 주체적인 삶을 갈망하는 성격을 강조했기 때문에 성에 순순히 머무를 수는 없고, 그래서 나름대로 충돌을 완충하기 위해 넣은 장치가 마법책인 것이다.

image 높은 탑에 갇힌 벨. youtube Disney 갈무리

그러나 과연 벨이 원하는 자유가 성의 여주인이 되고, 가끔 마법책을 통해 세상을 맛보는 것으로 끝나도 좋은가? <라푼젤>이나 <모아나>에서 여성 주인공이 기존의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스토리를 그려냈다면, 결국 벨의 진정한 사랑은 결혼이라는 최종 보상을 받는 것에서 멈춘다. 이에 대해서 <동화의 정체>는 보몽 부인의 원작을 이렇게 분석한다. '이처럼 여성의 복종을 설교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중략) 보몽은 소녀들에게 미리 인생을 가르쳐주고 싶어 했다. 보몽이 생각한 인생은 규범적으로 공인된 부르주아 관습에 따라 정해지는 결혼 바로 그것이었다.' 결국 2017년 리메이크된 <미녀와 야수>는 원작의 설정을 넘지 못한다. 차라리 왕자가 된 야수와 함께 책에서만 봤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결말 지어지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왓슨은 벨과 야수의 사랑이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겨우 장미 한 송이를 꺾은 아버지와 생이별을 시키고 자유를 앗아간 야수에게 벨이 기껏해서 하는 반항이라곤 줄을 꼬아 탈출하려는 시도 한 번과, 현명하지 못하게도 늑대가 나오는 밤에 말을 타고 달려가는 탈출 한 번뿐이다(그리고 그 탈출에서 야수가 벨을 구하려다 상처를 입는 바람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어머니를 닮아 용기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벨의 행동이라기에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납치 가해자가 다쳤을 때 약해진 그를 보살피면서, 자신을 거칠게 다루던 가해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피해자를 상상해보면 벨의 간호가 전형적으로 유순한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스톡홀름 증후군과 그리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Entertainment Weekly 인터뷰. 엠마 왓슨은 개봉 전 벨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하지만 중심 플롯을 수정하지 않는 이상, 왓슨의 이런 노력은 피상적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사실 왓슨에 대한 실망은 아무리 코르셋을 입지 않은 벨을 연기했다고 하지만 그녀가 코르셋 없이도 날씬한 허리를 가지고 있다는 한계와도 같다(왓슨이 억지로 허리 살을 찌워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왓슨이 벨을 21세기 페미니즘을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한들, 이미 벨이라는 캐릭터는 전통적으로 추앙되는 여성상에 머물러있다는 한계 말이다. 벨의 온갖 미덕은 기본적으로 그녀가 미녀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그녀의 똑똑함과 용기는 마을 최고의 아름다운 여성이기 때문에 빛난다. 마을의 다른 여자들은 멍청하고, 외모에 치중하지만 결코 벨을 따라갈 수 없으며 개스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해서 그녀를 질투한다. 개스톤의 말마따나, 벨은 예쁘고 똑똑한데다 다른 여자들처럼 '관심을 끌려고 가볍게 굴지 않는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들과 대비되어 희소성을 지닌다.

<미녀와 야수> 관련 BBC 인터뷰에서 왓슨은 "페미니즘은 다른 여성을 공격하는 도구가 아니다(feminism is not a stick with which to beat other women with)"라고 답했다. 왓슨이 벨을 재해석할 때, 굳이 <추녀와 야수>로 리메이크할 필요는 없다. 한 명의 배우일 뿐인 그녀가 다 짊어져야 할 작업도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벨은 기존의 미디어가 여성 캐릭터를 다룰 때 사용하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디즈니는 엠마 왓슨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페미니스트 셀레브리티와 작업하는 것을 기회로 삼아 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보여줬다. 거의 구색 맞추기 식으로 출연한 유색인종과 LGBT 캐릭터(르푸는 게이 캐릭터지만 우스꽝스럽고 충성스런 친구 정도로만 그려진다)는 차치한다 치더라도 이 작품의 아쉬운 점은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실망은 벨을 연기한 엠마 왓슨에게로 돌아간다. 물론 왓슨만이 영화에 책임을 져야할 필요는 절대 없다. 그녀가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다고 해서 모든 작품에 페미니즘의 잣대를 들이대며 사상 검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며, 앞으로 왓슨이 그런 칼날 앞에 위협 받는다면 우리는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분명히 우려가 예상되는 작품을 선택했고, 팬들이 어떤 점을 걱정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영화 개봉 전 인터뷰를 통해서 그 우려를 불식하려는 대답을 했다는 점에서 팬이자 영화를 보는 우리는 충분히 페미니스트 엠마 왓슨에게 실망할 수 있다. <미녀와 야수>라는 전세계적으로 각인된 캐릭터와 예쁘고 똑똑한 배우가 결합했지만, 엠마 왓슨과 디즈니는 21세기 페미니즘을 통해 다시 태어난 벨을 만드는 데에 실패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도 페미니즘 운동을 멈추지 않을 그녀가 온전히 감내해야만 하는 숙제로 남는다.

커버 사진=youtube Disney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