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licts

생리컵이 또 거절 당했다

조경숙 2017년 03월 31일

신고 품목에조차 생리컵은 없다

두 달 전 친구에게 링크 하나를 받았다. '생리컵 공동구매 신청서'. 마침 극심한 생리통에 시달리며 이번에야말로 생리컵을 구매하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신청했다. 보통의 해외 직구 기간보다 훨씬 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참을 수 있었다. 생리의 괴로움 속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 전 “생리컵 수입 거절에 대한 안내문”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주문한 생리컵이 공항에서 수입 거절됐다는 내용이었다.

생리컵이 국내로 들어오는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생리컵 공동구매를 진행한 여성단체에 따르면 신청한 사람의 수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사백오십여 명에 달했다. 주문한 생리컵은 팔백 개에 육박했다. 이에 1차적으로 오백여 개를 주문했는데, 대량인 탓에 관세사를 통해 수입 신고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런데 품목이 ‘생리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홉 군데의 관세사에서 일제히 통관 절차 진행을 거절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전화한 열 번째 관세사에서 진행해보자고 긍정적인 답변이 왔지만 수일의 검토 후 결과적으로는 수입이 불가하다는 결론을 냈다. 일차적인 이유로는 생리컵이 일반 수입 신고 품목에 존재하지 않고, 이차적으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생리컵을 의약외품으로 허가한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관세사에서 말했듯이, 현재 생리컵은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못한 품목이다. 다양한 브랜드와 사이즈의 생리컵이 공급되고 있는 해외에 비해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생리컵은 단 한 종류도 없다.

계속되는 식약처의 '밀당'

속옷에 부착하는 생리대와 달리, 생리컵은 천연고무로 된 깔때기 모양의 컵을 접어 질 내에 삽입한다. 접어서 넣으면 안에서 펼쳐져 컵 모양의 깔때기에 피가 고인다. 탐폰도 생리컵과 유사하게 질 내에 삽입한다. 그러나 생리대와 유사하게 주기적으로 갈아주어야 하고, 적은 확률로 탐폰 내에 포함된 화학 물질 때문에 쇼크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생리컵은 천연 고무로 돼 있다. 그래서 일부 알레르기 반응이 있긴 해도 쇼크를 일으키진 않고, 수시로 갈아주지 않아도 된다.

image 사진=부루스디

현재 스마트 생리컵을 개발해 해외에서 주목받으며 판매 중인 국내 스타트업의 생리컵도 국내에서는 판매되지 않는다. 식약처의 허가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해당 스타트업의 대표는 생리컵에 대한 심사 기준 자체가 없어 사실상 허가 절차가 부재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작년 12월 이와 관련한 보도가 SNS를 타고 급속히 퍼지면서 식약처에 대한 항의가 잇따랐다. 식약처는 이에 생리컵의 허가를 위한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발 벗고 해명에 나섰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생리컵은 단 한 종류도 없고, 심지어 해외 직구 생리컵조차 대량의 경우 수입 통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생리컵 안되는 이유.. '실리콘' 때문?

개인적으로 소량 해외 직구 하는 생리컵은(별도 신고하지 않아도 되므로) 국내에 반입이 가능한 데에 반해, 생리컵을 대량 구매할 경우 국내에 반입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식약처가 생리컵을 단 한 번도 허용한 적이 없다는 데에 있다. 식약처가 지난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생리컵은 생리대/탐폰과 달리 ‘실리콘’으로 제작돼 있기 때문에 생리대/탐폰이 포함되어 있는 '의약외품’ 규정 외에 ‘의료기기’ 요건 또한 충족시켜야 한다. 체내 삽입형 의약외품이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제작된 재질에 따른 규정이다.

실리콘이 의료 기기 요건에 포함되는 이유는, 실리콘에도 종류와 등급이 세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업용부터 의료용까지 실리콘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실리콘으로 제작된 ‘생리컵’의 경우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생리컵은 생리대/탐폰과 달리 별도의 ‘의료기기 안전성 시험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반면 생리컵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유럽은 이와 같은 국내 실정과 달리 생리컵을 생활용품으로 구분하기 때문에 의료기기와 같은 복잡한 심사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image 사진= "mystery2" (CC BY-SA 2.0) by Idhren

그렇지만 공업용 실리콘을 사용하지 않는 한 실리콘 자체가 인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은 극히 드문 데다가 이미 유럽 시장에서 공인된 상품들도 반입되지 못하는 건 다소 과도한 처사다. 국내에 생산되고 있는 생리컵이 없어 해외 직구를 통해 구매하려는 목적인데, 똑같이 ‘국내에 허용된 생리컵이 없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반입이 불가하다는 판단은 사실상 여성 소비자들에게 생리컵이라는 선택지를 삭제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지난주 국산 생리대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된 이후 여성들 사이에서는 대안 생리용품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발암 물질을 피해 일회용 생리대에서 면 생리대로 바꾼다 하더라도, 생리대 사용에 따른 불편함은 여전히 감수해야 한다. 밤에 자기 전 오버나이트 특대형을 착용해도 자고 일어난 뒤에 생리혈이 꼭 속옷 뒤쪽으로 새고, 걸어다닐 때마다 생리대가 삐뚤어질까 늘 신경써야 한다. 하지만 생리컵은 이런 불편함에서 여성을 해방시켜준다. 실제로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생리컵을 쓰고나서 삶의 질이 달라졌다’며 생리컵을 극찬하고, ‘자신에게 맞는 생리컵을 고르는 법’, ‘브랜드별 생리컵의 차이’ 등 생리컵 정보를 담은 전문 블로그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여성들의 관심에 비해 여전히 국내에서는 생리컵을 연구한 논문도, 허가받아 판매되는 생리컵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생리컵의 생산과 유통을 지연시키는 건 과도한 규제도 규제지만, 무엇보다 여성의 생리에 대한 공적 사회의 무관심이 반영되어 있는 게 아닐까. 500개의 생리컵이 대한민국에 도착했다가, 공항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시 반출된 이번 사건이 단지 ‘해프닝’으로 끝나선 안 될 이유다.

커버 사진 = 정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