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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의 자충수

병역면제자 장관 임명 안 한다는 것, 진보 정당 역할 아니다

하민지 2017년 03월 29일

SNS에 심상정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틀 전 나온 기사 때문이다. 정의당 대선후보인 심상정 상임대표는 지난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합리적인 이유"로 병역 면제를 받았더라도,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분들은 장관으로 임명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국가 고위직 가운데 병역 회피 또는 면제자가 많"기 때문에 행하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원외 진보 정당인 노동당은 즉각 논평을 냈다. 노동당 김성수 대변인은 논평에서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정의당 대선 후보의 공약이 “병역 면제자 정무직 배제”라는 사실에 우리는 정의당이 과연 이 사회의 진보를 추구하는 정당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image 사진=심상정 페이스북

진보 정당은 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현재 진보 정당들의 출발이었던 민주노동당은 호주제 폐지 법안을 발의해 여성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또한 장애인·노인·임산부를 위한 저상버스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처럼 진보 정당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이들과 관련한 이슈를 선점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 왔다.

현재 원내 진출한 정당 중 진보 정당은 정의당이 유일하다. 현재까지 대선 후보를 낸 정당도 정의당 뿐이다. 국회에서, 그리고 대선에서 유일하게 진보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심 대표가 이런 공약을 냈다는 것은 그동안 진보 정당이 우리 사회에서 보여준 모습들과 어긋난다. 아직도 우리사회는 합리적 이유로 군 면제를 받은 사람들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심 대표의 공약은 이 소수자들을 다시 차별의 영역으로 몰아넣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존재감 부족한 진보 정당, 대안이 포퓰리즘?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 노동당, 녹생당, 민중연합당 등 진보 정당들의 득표율을 모두 더해도 10%가 채 안 된다. 19대 총선보다 더 떨어졌다. 진보 정당들은 지난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위기에 빠졌으나, 통진당과 선 그으며 정체성 확립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진보 정당들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뚜렷한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다. 진보 정당들이 선점하던 경제 민주화, 모병제, 기본소득 등의 이슈를 이제는 다른 정당들도 말하고 있다. 다른 정당들과 차별화가 되지 않는 것이다. 고려대 최장집 명예교수는 작년 6월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와 정의당의 역할'을 주제로 한 특별 강연에서 "사이즈가 다를 뿐 주류 정당과 별로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정의당을 비판했다.

심 대표는 지난 2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정의당이)원내 정당 중 제일 왼쪽인데, 저희 공약보다 훨씬 앞질러가는 (다른 정당의) 공약들이 많다"며, 다른 정당과 차별화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에 심 대표는 "저와 정의당은 급진적이고 과격한 경쟁을 하는 곳이 아니다"며,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정의당의 정책을) 실천해서 실제 국민의 삶을 바꾸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image 사진=뉴스타파 영상 갈무리

"과격한 경쟁"을 하지 않는다던 심 대표. 그러나 그가 내놓은 이번 공약은 과격하다. "과격한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말 이면에는,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다. 국민에게 당장 듣기 좋은 말, 소위 '사이다' 발언을 해 인기 경쟁을 할 바에야,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뚝심 있게 소신을 밀어 붙이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러나 이번 공약에는 그런 뚝심은 보이지 않고 '과격'만 보인다.

정당 중 가장 먼저 대선 후보로 확정됐으나 지지율은 아직 3%가 되지 않는다. 마음이 조급했을 수도 있다. 또, 진보 정당들은 안보에 취약하다는 이미지도 있다. 이 이미지를 전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심 대표는 앞서 언급한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진보 정당의 안보관을 불안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정의당이야말로 진짜 안보를 할 수 있다"며 논란의 공약을 바로 언급했다. 존재감 부족해 지지율은 낮고, 안보에 취약하다는 이미지도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점들을 해결한 대안으로 포퓰리즘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대중 정당이라면 어디든 대중의 인기를 얻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포퓰리즘적인 공약을 내세워 대중에게 단기간 '사이다'만 안겨주는 것은 공허한 '사탕발림'으로만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번 공약도 고위층의 병역 비리를 근절하겠다는 메시지 전달에는 효과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정당에 비해 늘 사회적 약자 중심의 평등을 최우선의 가치로 내걸었던 진보 정당 '정의당'이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인기영합주의 시류에 휩쓸려 진보 정당의 존재 이유인 사회적 약자를 외면했다는 것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심 대표, 진보 정당 대선 후보로서의 가치 보여주길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유일하게 기각 의견을 냈다. 김 권한대행은 결정문 중 반대 의견을 집필하며 진보 정당이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진보 정당은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한다. 정치적 다수자는 직접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이 이미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돼 현실에서 제도적으로 구현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수 정당이 이들의 의견을 높은 확률로 대변한다. 반면 정치적 소수자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 표현하지 않으면 많은 이가 몰라주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 소수자들의 생각이 표현될 기회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진보 정당이 필요하다.

진보 정당 '정의당'의 대선 후보인 심 대표는 그동안 소수자를 대변하는 다수의 공약들을 발표해 왔다. 성소수자가 포함된 차별금지법에 찬성하겠다고 했고, 동반자등록법을 제정해 비혼 커플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게 하지 않고, 맞벌이 가정에서 맞돌봄도 해야 한다는 '슈퍼우먼방지법'은 대통령 후보로서 내건 1호 공약이었다. 많은 유권자들이 이 공약들에 환호를 보냈다.

image 사진=심상정 페이스북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병역 면제자는 장관 임명을 하지 않겠다는 공약은 소수자를 대변하지 못 하는 공약이다. 민주화 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느라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 장애 판정까진 받지 않았지만 신체·정신적 이유로 면제받은 사람, 정치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는 소수자들은 '국가 요직을 맡지 못 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헌법에 보장된 '공무담임권'이라는 기본권도 침해하는 일이다.

또한 이번 공약은 사단별 모병제를 실시하겠다던 공약과도 어긋난다. 징병제를 단계적으로 철폐해나가겠다더니 현 징병제도에서 병역을 면제 받게 된 이들을 차별하는 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고위층의 병역 비리가 심각하고 누가 '진짜' 병역 비리자인지 걸러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울 순 없는 것이다. 죄 지은 자를 색출하기 위해 죄 짓지 않은 자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 하다.

진보 정당이 다른 정당에 비해 존재감이 부족할지라도 이 사회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남다른 인권 의식으로 정치적 소수자 보호에 힘 쓰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진지하게 이번 공약 철회를 고심해야 한다. 포퓰리즘에 매몰돼 병역을 이행하지 않은 이들에게 비정상 국민의 낙인을 찍는 것은 차별적이며 진보 정당의 역할이 아니다.

커버 사진=심상정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