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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롭다는 말을 거부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의 홈리스 프로젝트 주도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오드리 쿠퍼 편집국장 인터뷰

정인선 2017년 04월 05일

‘여기서 그런 실험이 나왔다고?’

눈을 의심했다. 3월 9일(현지시간) 아침 9시 반. 편집회의 시간이 다가오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하 <크로니클>)의 에디터들이 하나둘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긴 탁자 맨 꼭대기에 오드리 쿠퍼 편집국장이 앉자, 양 옆으로 에디터들이 주르륵 앉았다. 다음 날 신문과 그날 신문의 기사 배치를 정하는 회의를 하는 내내, 오드리 쿠퍼 편집국장은 에디터들의 말허리를 익숙한 듯 끊고 자기 의견을 펼쳤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고질적인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80개 지역 언론이 연합한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이하 홈리스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언론사의 편집국 회의가 이렇게 권위적이라니. 지난해 여름 <한겨레21>, <블로터>, 구글이 주최했던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 수강이 계기가 돼 미디어 스타트업 ‘디퍼(Deepr)’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된 내게, 크로니클의 편집회의 풍경은 실망스러웠다.

image 20세기 중후반 이름을 날린 크로니클의 칼럼니스트 Herb Caen이 사용하던 타자기. 2층 편집국 입구에 전시된 오래된 타자기에서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전통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진 = 박상현 한겨레21 교육연수생

“우리는 새롭다는 평가가 불편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 최대 일간지인 <크로니클>은 지난해 6월 실험을 시작했다. 1년 내내 따뜻해 거리에서 지내도 동사할 걱정이 없는 탓에 샌프란시스코는 홈리스가 살기 최적의 도시다. 실리콘밸리가 불러 온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단번에 샌프란시스코를 미국에서 인구 대비 홈리스 비중이 가장 높은 도시로 만들었다. 시민들도 거리의 홈리스를 익숙한 풍경의 하나로 여긴다. 크로니클의 오드리 쿠퍼 편집국장은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역 언론사들을 설득했다.

image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사옥. 시내 중심가에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로 향하는 길에도 블록마다 홈리스와 마주칠 수 있었다. 사진 = 박상현 한겨레21 교육연수생

자유주의 정서가 강한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특성상, 하나의 문제의식 아래에 70개가 넘는 지역 언론이 모이는 초대형·초정파적 실험이 가능할지 의심을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쿠퍼 편집국장은 “당신이 어떤 매체에서 뉴스를 읽건, 하루에 한 번은 꼭 홈리스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홈리스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image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에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 QRPD 등 대형 언론사 뿐 아니라 1인 미디어, 대학 라디오 방송국까지 총 80여개 지역 언론이 참여했다. 사진 = SF Homeless Project

학계에서는 9개월 넘게 이어진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를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의 사례로 주목했다. 비영리기구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Solutions Journalism Network)’는 지난해 말, 사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걸 넘어 새로운 대안까지 제시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의 대표적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로 홈리스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하지만 오드리 쿠퍼 편집국장은 “우리는 새롭다는 평가가 불편하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정치를 대신해 사회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프로젝트의 목적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거리에서 홈리스를 그만 마주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만큼의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라고 알려 주고 싶었다. 시민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의 가치를 따져 보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크로니클은 데이터 시각화에 공을 들였다. 홈리스 프로젝트의 문을 연 사설에서, 크로니클은 지금까지 샌프란시스코 시가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쏟은 예산의 규모와, 홈리스 수의 증가 추세를 세분화해 보기 좋게 가공했다. 사설이라고는 안 보일 정도로 사실관계를 촘촘히 엮었다. 스크롤 기술을 활용해 독자가 기사를 읽어 내려갈 때 중요한 수치가 부각되게 했다.

image 미국 지역언론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오드리 쿠퍼 편집국장이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와 진행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 박상현 한겨레21 교육연수생

1인 미디어부터 지역 최대 언론사까지

“(자유를 중시하는 도시의 분위기 탓에) 홈리스를 모두 시설이나 감옥에 넣자고 하면 화를 내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누구도 침착하게 앉아 문제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쿠퍼 편집장이 말했다.

문제는 오래되고, 복잡했다. 홈리스 문제가 고질화된 원인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한 사람이 처음 홈리스가 되고 나서 다시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자게 되는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는지, 그 시간의 격차가 홈리스 완전 탈피까지 걸리는 시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꼼꼼히 따졌다. 단순히 홈리스의 수의 많고 적음을 넘어, 초기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문제의 뿌리가 깊어졌다는 걸 규명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매체들은 역대 샌프란시스코 시장들의 목소리도 들었다. 전직 시장들이 보내온 편지는 이들이 겪은 행정적 고충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image 사진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웹페이지 갈무리

image 2013년과 2016년 사이 샌프란시스코 경찰에 접수된 홈리스 문제와 관련한 민원 수 증가 추세를 나타낸 인포그래픽. 사진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웹페이지 갈무리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는 일도 중요했다. 별다른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을 것 처럼 보이는 홈리스 문제이지만, “정치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냉정함이 중요하단 게 쿠퍼 편집국장의 설명이다. “순전히 불운에 의해 거리로 몰린 사람은 극소수다. 홈리스 가운데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도 많고, 마약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문제에 의해 홈리스가 된 경우도 많다.” 따라서 각자가 생각하는 해결책도 수용시설을 늘리는 것에서부터 마약 중독 치료 지원을 늘리는 것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이런 복잡한 문제에 감정이 섞여서는 곤란하다는 게 쿠퍼 편집국장의 생각이다.

9개월간의 실험은 문제를 해결할 힘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냈다. 거대한 미디어 연합체가 홈리스 문제에 관심을 보이자,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홈리스 보호소를 지으려던 계획을 당초보다 앞당겼다. 한 기업 CEO의 투자로 홈리스 보호소를 짓는 데 필요한 기금도 마련됐다. 또 지난해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홈리스 문제 해결책을 제각기 공약에 밝혔다. 미국 내 다른 도시로도 비슷한 프로젝트가 확산됐다. 샌디에고의 ‘샌디에고 홈리스 어웨어니스’가 대표적이다.

image 정치인들의 홈리스 문제 해결책에 대한 입장을 검색 한 번으로 비교해 볼 수 있게 시각화했다. 사진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웹페이지 갈무리

오드리 쿠퍼 편집국장은 식상한 문제를 다르게 전달하기 위해 변화를 거듭하는 것 역시 언론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각 언론사가 가장 자신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구사하면 된다”는 것이다. 탐사보도에 강한 크로니클은 홈리스 프로젝트에서도 긴 기간의 취재로 장점을 발휘했다. 영상이나 인터랙티브 뉴스를 시도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버즈피드는 ‘오늘 밤 어디서 주무시겠습니까?’라는 비디오 게임을 제작해, 홈리스들이 매일 부딪히는 문제에 독자들이 한번에 이입할 수 있게 했다. 대형 언론사 뿐 아니라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제작자, 대학 라디오 방송국도 각자의 방식대로 참여했다.

image 버즈피드는 '오늘 밤 어디서 주무시겠습니까?'라는 게임을 제작해 홈리스 문제에 독자들이 한번에 이입할 수 있게 했다. 사진 = 버즈피드 웹페이지 갈무리

오래된 문제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역할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언론사들을 “페이크 뉴스나 만드는 것들”이라고 몰아가며, 언론에 전쟁을 선포했다. 한편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언론이 트럼프 당선에 일조했다는 비판 또한 시민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하지만 쿠퍼 편집국장은 “샌프란시스코 홈리스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시민들이 다시 언론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언론사들이 힘을 합쳐 한 가지 문제에 파고드는 모습을 보인 덕에, 정부를 감시·비판하고 해결책까지 촉구하는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민들이 다시금 느끼게 됐다.”

‘넥스트 저널리즘’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크로니클과 같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일간지에게나, 막 뉴스 스타트업을 시작한 나에게나 결국 시민들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얼마나 몰입하고 싶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다.


<한겨레21>에도 실린 기사입니다.